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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찌 Sep 29. 2024

우리의 모래성과 우리의 해변가


너에게 편지를 부치지 못한 이유라 함은 나 또한 그 해변가를 떠났기 때문이겠다.



너의 사연 있는 침묵을 좋아했다. 너의 당황스러운 친절을 좋아했다. 휘어지는 눈매의 웃음소리를 좋아했고 네가 듣던 알록달록한 노래들을 좋아했다. 네가 들려주는 너의 세상을 좋아했다, 자주 비바람과 번개가 치던 나의 세상과는 다르게 너의 세상은 금방이라도 꽃들의 지저귐이 들릴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시간을 멈추고 싶어 했지만 멈출 수 있었던 건 서로의 마음에 풍덩 빠져버리는 것을 포함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많은 곳을 함께하며 추억이란 모래성을 쌓았다. 높은 산을 오르며 머리카락이 얼어 하얗게 변했을 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며 서로를 보고 한참을 웃었고, 햇살이 좋으니 소화를 시킬 겸 정처 없이 몇 시간을 걷기도 했다. 또 우리는 별이 잘 보이는 곳이면 무작정 도로에 누워 밤하늘을 구경했고, 잠들기가 아쉬워 새벽 내내 걸어 다니며 얘기를 했어도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중에 우리는 바다를 제일 좋아했다. 우리는 툭하면 바다로 달려가 제일 예쁜 조개껍질을 찾아 서로 주고받기도 했고, 윤슬이 가득한 바다에서 물수제비도 뜨며 한참을 있다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이병률의 시집을 읽었다.

술에 취한 새벽엔 지평선 너머 배들의 불빛들을 보곤 별들이 바다에 내려와 쉰다고 하며 감상에 젖었고,

새카만 파도 소리를 방패 삼아 서로의 여린 마음을 꺼내 보이며 파도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우리는 추억으로 모래성을 쌓았다. 가장 꼭대기 깃발에 쓸 나뭇가지부터 중간중간 성의 장식으로 꽂을 것들이 모두 우리의 추억들이었다.

그 시간이 우리에겐 밀물의 시간이어서일까, 너는 썰물이 밀려나갈 때에 나를 떠났다.



네가 떠난 해변가에서 나는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모래성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을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하니까.

여러 번의 밀물이 찾아오고 또 여러 번의 썰물이 지나가 흔적 없이 사라진 모래성에서 가만히 우리의 흔적을 더듬었다.

가장 먼저 잊힌 것은 네가 썰물과 함께 떠난 날의 기억이었고, 마지막까지 기억하려 애썼던 것은 너의 처음 모습이었다.



너의 사연 있는 침묵을 좋아했다. 너의 당황스러운 친절을 좋아했다. 휘어지는 눈매의 웃음소리를 좋아했고 네가 듣던 알록달록한 노래들을 좋아했다. 네가 들려주는 너의 세상을 좋아했다, 자주 비바람과 번개가 치던 나의 세상과는 다르게 너의 세상은 금방이라도 꽃밭에서 웃음소리가 날 것 같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편지를 부치지 못한 이유라 함은 이제는 나 또한 그 해변가를 떠났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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