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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엄마가 미안해, 처음 살아봐서 잘 몰랐어.




첫 번째 임무를 끝내고 두리번거리던 모깨비는 얼마 멀지 않은 근처 오피스텔에 잠들어 있는 20대 직장 여성의 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대 직장 여성의 이름은 한지연. 지연 씨는 꿈속에서 다시 회사에 출근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잠이 든 건데, 여전히 끝내지 못한 업무가 마음에 걸린 건지, 꿈에서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모깨비는 통통통 튀어 책상 위에 올라가 말을 걸었습니다. 처음엔 화들짝 놀란 지연이 작게 [뭐야-]라고 했지만 모깨비가,


“난 꿈의 요정이야. 너에게 작은 고민이 있다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그러자 동공이 흔들리며 한숨을 내쉬듯 푸념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업무가 너무 많아. 일이 많은데, 일을 또 하고 나면 또 일이 있고, 또 하고 나면 또 일이 생겨. 그래서 너무 힘들어.”


그 말을 끝으로 계속해서 말을 할 듯 말 듯, 입매를 우물우물하던 지연은 다시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난 원래….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차마 그만…둘 용기가 나지를 않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냥…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있어…..”


이야기를 들으며 모깨비는 지연을 계속 살피며 유심히 표정을 들여다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무심한 척 물었습니다.


넌 원래 무슨 일이 하고 싶었는데?


………………..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


…….


엄마가 요리사셨거든.



그 말에 모깨비는 ”근데 왜 하지 못했어?”라고 물었고 이내  여자가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평생을 요리하면서 고생하셔서 제발 너만은 요리하지 말아 달라고 했거든.”


….


“후….. 차마 그 말에 싫다고 할 수 없었어.” 모깨비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다시 일하려 하는 지연에게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네 인생이잖아? 엄마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이고, 너의 인생은 너의 인생이잖아. 엄마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닌 거잖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나?”



여자의 동공이 또 한 차례 크게 흔들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습니다. 지연의 눈물에 당황한 모깨비를 보지도 않고, 지연은 울분을 쏟아내듯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엄마가 제발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깨비가 물었습니다. “그럼 너네 엄마가 바라는 건 네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몸만 편한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여자가 그 말에 크게 한숨을 내쉬며 나도 잘 모르겠다며 중얼중얼 거리며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에 차마 모깨비는 여긴 꿈속이니 더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슬그머니 뒤로 몸을 빼 지은이네 집으로 통통 달려갑니다. 지은이에게 찾아간 모깨비는 심드렁하게 지은의 침대에 누우며 빨래를 개고 있는 지은에게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구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직장인이라는 성질의 삶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 모깨비라서 여자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고 지은에게 답을 요청하는 말을 건넵니다.


“난 인간 세상을 모르겠어.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대답을 알려줘.”


수건을 다 갠 채 욕실 문 앞 수건 칸에 올려놓으러 가면서 지은이 웃으며 대답해 줍니다.


“있잖아,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모든 일은 정답이란 게 없더라고. 내 정답은 내가 찾아가는 거지, 남이 찾아주면 그게 정답이 아닐 때가 많더라고.  그러니까 너도 너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게 고민해 봐.”


침대에서 내려와 고개를 갸웃 거리는 모깨비를 보며 지은은 수건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 맞는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 수 있어. 내 정답은 내 거니까.”



그 말에 더더욱 갸우뚱하는 모깨비였습니다. 지은이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요?


아까의 지연처럼 한숨을 내쉬듯이 말을 내뱉는 모깨비. “그럼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지?” 지은이 대답한다.



“음, 지연 씨의 고민은 엄마의 걱정이었으니까 그 어머니를 우선 만나러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통통통 데구루루 이리저리 찾다가 겨우 지연 씨 엄마의 꿈으로 찾아간 모깨비에게 보이는 모습은 지연 씨가 점심시간에 행복하게 웃으면서 회사 동료들과 사담을 나누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나온 모깨비는 지은의 집과 지연의 집 중 갈래 길 앞에서 통통 뛰며 고민을 하다가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지나는 동안 같은 자리를 데구루루 돌며 고민한 모깨비였습니다. 하루가 지나, 마침내 고민을 끝낸 모깨비는 지연 씨에게로 향했습니다.


 여자의 꿈속으로 들어가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것 같은 얼굴로 일하고 있는 책상 위로 올라가 확신에 찬 말을 걸어봅니다.



“있잖아, 네 엄만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거 같아.”



“나도 그걸 알아.”


“.........”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잖아.”


모깨비는 다시금 확신에 차서 말을 이어봅니다.



“근데 넌 지금 행복하지 않잖아?”



  여자는 그 말에 모깨비를 말을 잇지 못하는 듯이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모깨비는 다시 한번 설득하기 위해 얘기를 꺼냅니다.



“넌 지금 행복하지 않잖아.”



  여자는 반복해서 그 말을 듣더니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맙니다.


“맞아... 나 지금 행, 복하지 않아... 요리가 너무 하고 싶고, 이 일은 그만두고 싶어...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게 좋았거든. 그래서 나도 같은 길을 가고 싶었는데 왜 반대만 하시는지 모르겠어.”



  여자의 말에 모깨비는 엄마의 꿈속에서 있었던 모습을 천천히 들려줍니다. 여자는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을 펑펑 울더니 꿈속에서 퇴근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모깨비는 놀라 통통 튀어 뒤따라가 봅니다. 꿈속에서 퇴근에 도착한 집은 일에 치여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발 디딜틈만 군데군데 있을 뿐,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집. 여자의 엄마는 여자가 독립한 후로 한 번도 들려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


  모깨비는 여자에게 살살 달래는 어투로 “네 엄마에게 이 집에 와달라고 해볼래? 그리고 솔직하게 다 얘기해 봐. 그다음에 내가 너를 다시 만나러 올게.”



  여자는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곤 잠에서 깨어납니다. 비몽사몽 한 정신을 다잡으며 모깨비의 말대로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엄마를 집에 초대합니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에 여자의 엄만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집안을 들어서며 여자를 쳐다봅니다.



“너 미쳤어? 집이 이게 무슨 꼴이야. 편한 직장 다니면서 왜 집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안 치운 거야, 정말.”



  여자가 엄마의 폭격 같은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떨리는 시선을 애써 누르며, 솔직하게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그간에 있었던 일들과, 엄마의 모습이 좋아서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것,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던 것, 꿈에서마저 야근하며 이 일에 집착하다시피 살아서 보다시피 집이 이런 꼴이라는 것까지 모두요.


  여자의 엄마는 어느 순간 말없이 듣더니 일단 오늘은 집에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여자는 힘없이 엄마를 보내고 다시 소파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눕습니다. 그날 밤 모깨비는 엄마의 꿈속으로 살금살금 들어갔습니다. 엄마의 꿈속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2명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러게 애가 원할 때 원하는 걸 하게 해 줬어야지!”


- 일이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래?


그렇다고 저렇게 살게 놔둘 거야? 애가 한참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한참을 2명의 자아가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결론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이대로 둘 순 없어, 내일 다시 얘기를 해보자고.


- 무엇이 되었건 이대로 둘 순 없어, 내일 다시 얘기를 해보자고.



  다음날 아침 여자의 집에 찾아간 엄마는 문이 열리자마자 말없이 방을 조금씩 치우기 시작합니다.



아, 엄마 둬,  내가 할게.



  아무리 말해도 묵묵부답으로 치우기 시작하는 엄마. 집이 얼추 치워지고 사람 사는 모양새가 대강 갖춰질 무렵 마지막으로 빨래를 돌려놓고 식탁에 앉으며 딸을 보곤 이리 와 앉으라고 합니다. 여자는 모든 걸 체념한 것처럼 힘없이 가서 앉습니다.


엄마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엄마가 너무 엄마 욕심만 부린 거 같아. 네가 정해보고 싶으면 한 번 시작해 봐. 근데 그건 알아야 돼. 엄청 힘들고 괴로운 날이 더 많아. 내 요리 먹어주면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보단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만 알아둬.



그 말에 예상도 못 했는지 잠시간 넋이 나가 있던 지연 씨는 이내 화색이 돌은 채로 웃으며 엄마를 끌어안습니다.



  모깨비는 이 광경을 근처 가까운 곳에서 다 지켜보고 지은에게로 돌아갑니다. 얼마 후 다시 찾은 여자의 꿈속, 근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전과는 다르게 활기찬 얼굴로 다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모깨비는 갸웃거리면서 묻습니다.


요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근데 해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많이 힘들더라고. 너무 힘든 일을 하고 나니까, 이 일을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잘해왔는지 알게 됐어. 그래서 그냥 이 일을 사랑해 보려고.


  여자의 말을 듣고 의문에 빠진 모깨비. 그렇지만 임무는 완수하였으므로 여자에게 금조각하고 요구합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 실반지를 하나 꺼냅니다.


우리 엄마가 예전에 끼고 다니라고 사줬던 건데. 너무 오래되고 얇아서 나는 이제 못 끼고 다녀 이걸 주면 될까? 


  진우 아빠에겐 귀걸이 한 짝을 받았었으므로, 개의치 않고 여자에게서 금반지를 받아 지은이네 집으로 향하는 모깨비의 뒷모습과 함께 반대편에선 여자가 즐거운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외전 엄마의 마음 ver


순간 배에서 꿈틀, 내가 품은 생명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아가 거기 잘 있니? 좁진 않고? 춥거나 배고프진 않고? 엄만 너를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어. 92. 09. 04


똘망이가 태어나 내 품에 안긴 오늘을 나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잘 만든 게 너야. 알고 있니? 네게 날 다 준다 한 들 아깝지 않을 것 같아. 93. 01. 10


아이가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루 종일 엄마를 찾는 지금이 너무 지겨웠다가도 다른 사람들 말 들어보면 금방 친구 생겼다고 엄마는 뒷전 된다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은 그냥 내 껌딱지인걸. 엄만 네가 계속 엄마 껌딱지였으면 좋겠어. 97. 05. 16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가는데 어떻게나 눈물이 나는지, 아직도 내 눈엔 마냥 아기인데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재잘재잘 친구를 기대하는 너를 보며 어쩐지 엄마는 기쁘면서도 벌써 좀 서운한 느낌이 들어. 이제까지 네 세상은 온통 나 아니면 가족들 뿐이었는데, 정말로 엄마와 점점 멀어지겠구나 싶어서. 그래도 지연이 엄마는 나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00. 03. 02


중2병은 남의 집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어떻게 지가 나한테 엄마한테 난 깨물어 뜯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잖냐고 할 수가 있지?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렸을 땐 그렇게나 예쁘고 애교도 많던 애가 완전 이상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애가 이대로 영영 잘못되면 어쩌나 덜컥 겁부터 난다. 08. 07. 22


진로를 정해야 한다며 슬그머니 진로 계획서를 내미는 거. 이 길만은 걷지 말기를 바라며 크게 뭘 보여준 것도 없건만, 엄마의 피를 따라서 요리사가 되시겠단다. 이 가시밭길을 뭐 하러 걷는다고 난리인지... 이 것만은 막아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키웠는데. 편히 살라고, 너만은 나처럼 먹고살 걱정에 끼니 때울 수 있는 일 찾지 말고 그저 티비에 나오는 아가씨들처럼 예쁘고 곱게 살라고 그렇게 키웠는데... 펑펑 우는 네 앞에서도 모질게 안 된다고 버티는 나를 언젠가는 네가 이해하는 날이 올까? 12. 03. 15


집안에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고, 덩달아 내 정신도 혼비백산. 얘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진 채로 살았던 걸까. 기어코 우겨 네 앞길을 내가 막아선 탓인가. 내가 부모가 처음이라 잘 못해줘서 애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아득하게 지나쳐간다. 귓가에 웽웽 둥둥 박동 소리에 이명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23.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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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하며 애도 집에 자주 들러 재잘재잘 떠들다 가곤 한다. 요리를 한답시고 그렇게 기세 등등 하더니 칼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네가 다치지나 않으면 제발 다행이겠다 싶었다. 며칠 만에 꼬랑지를 내리고 원래 하던 일로 복귀하는 너를 보며 엄마는 이 복잡한 마음을 행복이라고 하련다. 네가 이렇게 부딪혀도 보고, 엎어져도 보고, 다시 일어나 걷는 너를 뒤에서 묵묵히 바라봐주며 도움이 필요해지면 그제야 네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일. 다 큰 네게는 이제 부모란 그런 역할인 거겠지. 내 욕심에 너를 망쳤나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들면서, 여전히 지연이 넌 엄마한테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그저 걱정되고 자주 보고 싶은 딸일 뿐이야. 엄마 죽는 날까지 든든하게 비빌 언덕 되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넌 네 가고 싶은 길 가. 엄마가 뒤에서 언제든 네가 손 내밀면 잡아줘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엄만 죽는 날까제 네 엄마야. 23.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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