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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Apr 05. 2024

50살에 압구정 주민이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내가 꿈꾸던 50대는 이렇지 않았다.


50대가 되면 좀 더 여유 있게 살 줄 알았다. 아들 입시를 끝내고 더 이상 종종거릴 필요 없이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신도시에서 지금보다 평수를 넓혀 가 여유있게 지내고 싶었다. 문화 센터에서 강좌도 한두 가지 듣고 알바도 하면서 가끔 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물이 나오는 4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매일매일 벌레와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누수 걱정도 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도 없는 아파트 1층 도로는 온통 차들로 빼곡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이 아파트에 사는 걸 부러워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 동네에 있는 아파트에 살아서 부럽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압구정이다.


  나는 늦깎이 압구정 주민이다. 자녀 입시가 끝나면 다들 외곽이나 신도시로 빠져나가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거꾸로 중심부로 들어왔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로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대단하다고 한다. 나도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여기를 살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생각해도 꿈만 같다. 집값이나 한번 물어보자며 부동산에 들어갔다가 아파트 계약금을 내고 나왔다. 부동산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이제 우리 것이 된 아파트가 보였다. 우리가 저 유명한 ‘압구정 아파트’의 소유주라니! 이제 우리도 부자구나! 감격스러웠다.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남편과 마냥 웃었다. 실상은 우리의 모든 자금을 아파트에 다 털어 넣은 상태였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압구정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는 참 순진했었다. 몰랐기 때문에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40년이 넘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압구정에서 산다는 건 어떤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것인지, 위험하리만치 여유 자금이 없는 상태로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때 알았다면, 그래도 이 집을 산다는 결정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고민은 좀 더 했을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 50에 40년도 훌쩍 넘은 아파트에서 젊어서도 하지 않던 ‘몸테크’를 하며 그때의 무모함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것은 나이 50에 갑자기 압구정에 살게 된 여자의 고군분투기이다. 압구정에 산다는 건 듣던 대로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압구정의 다른 모습들이 보였다. 오래된 동네 압구정에는 거기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본 압구정은 밖에서 보는 압구정과는 달랐다. 압구정 주민이 되어 바라본 압구정,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압구정 아파트(출처: 직접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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