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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May 08. 2024

내 생애 가장 미쳤던 8일-1

코 앞에서 집을 놓치다

  2020년 6월 어느 날, 우리는 20년 넘게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8일 뒤, 우리는 압구정 아파트 계약금을 냈다. 그 8일은 내 생애에 가장 미쳤던 시간이었다.     




  남편이 처음 염두에 두었던 아파트는 압구정이 아닌, 대치동 A 아파트였다. 남편 계산으로 위치, 단지 크기, 투자 가치 등을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우리 집을 판 금액으로 간신히 접근 가능한 강남의 대형 재건축 단지 아파트였다. 


  원칙적으로는 우리는 곧 대치동 부동산으로 달려가 봐야 했다. 부동산은 발품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았다. A 아파트 단지까지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인 데다가 곧 서울로 이사를 할 예정이어서 바쁘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발품을 파는 건 잠시 미루고 일단 우리 집 매도 계약부터 제대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하지만 그새 매물이 나올지도 몰랐기 때문에 매도 계약을 진행하던 부동산 중개사 여사님께 혹시 A 아파트 매물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집을 파는 날이 왔다. 부동산에 도착하니 11시 정도였다. 매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매수인에게서 계약금을 받았다. 미우나 고우나 20년 넘게 소유했던 집을 보내려니 서운하면서도 후련했다. 어쨌든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았다. 계약을 끝내고 매수자와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고 있는데 중개사 여사님이 끼어들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A 아파트 계약하러 가실까요?”

  “예? 계약이요? 지금 당장이요?”

  “예, 지금 당장 가는 게 좋아요. 오전에 매물이 하나 나왔는데, 요즘은 매물이 나오면 바로바로 나가기 때문에 늦게 가면 물건이 없을지도 몰라요.”


  여사님은 초조한 듯 서둘렀다. 남편과 나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어안이 벙벙했다. ‘집을 판 날 바로 집을 산다고?’ 이런 속도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게 바로 강남 재건축의 레벨인가?’ 강남에 오래 살았지만 처음 보는 강남의 모습에 우리는 기가 죽었다. 그러든 말든 여사님은 우리를 차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막 시동을 걸기 전 매물이 아직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며 여사님이 차 밖으로 나갔다. 남편과 나는 차 안에서 앉아 있었다.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흥분이 몰려왔다. ‘드디어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사게 되는구나!’ 마침 일이 잘되려니 매도 계약금을 받은 참이라 수중에 매수 계약금을 낼 돈도 있었다. ‘어쩜 이렇게 맞춘 듯이 딱 들어맞을 수가!’ 날짜도, 금액도, 이 모든 일이 마치 이날 우리가 A 아파트를 사도록 운명 지어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마냥 좋아서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곧 돌아오겠다던 중개사 여사님이 나타나지를 않았다. 점차 우리도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한참 만에 차로 돌아온 연 여사님 얼굴은 잔뜩 찌푸린 하늘 같았다. 입을 떼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었다. 그새 매물이 나간 거였다. 우리가 매도 계약을 하기 전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계약을 끝내고 보니 없다는 거였다. 불과 1-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연 강남이구나!’ 우리는 다시 한번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이후 내 생애 가장 미쳤던 8일의 시작되었다.     




  문자 그대로 코앞에서 매물을 놓친 우리는 그 길로 A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 하지만 중개사 여사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뿐이었다. 혹시 몰라서 몇 군데 부동산을 더 돌아봤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현재 물건이 전혀 없으며 새로운 매물이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날이 끝날 무렵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매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게 천 년 전 같았다. 집을 무사히 팔았다는 기쁨은 이미 없었다. 이제는 살던 집은 팔렸는데 살 집이 없다는 초조감만 남았다. 평소 같으면 좀 더 느긋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한번 코앞에서 집이 손아귀에서 튀어 나가는 걸 본 후였다. 자칫하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집도 팔았겠다, 우리는 내친김에 매수까지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A 아파트 단지 매물이 없다고? 그럼 B 아파트로, B 아파트 주인이 가격을 올렸다고? 그럼 다시 C로. 


  그렇게 미친 듯이 일주일 동안 대치동 아파트들을 뒤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매물을 문의할 때마다 가격이 뛰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마치 코 앞에 토끼 한 마리가 있는데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다가가면 폴짝 튀어 나가 버리는 모양새였다. 손에 닿을 듯하면 다시 오르고 또 올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돈이 있어도 사질 못하니 거지가 된 것만 같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그 모든 일에도 끝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다지 마음에 차지도 않던 아파트까지 매수 문의가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를 사려고 20년간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았나 싶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을 겸 친구 S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S는 평소에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 적절한 때에 투자를 잘해서 반포에서 제일 유명한 단지 2개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S의 반응은 냉정했다. S는 우리가 이제껏 보러 다닌 모든 아파트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이제 재건축으로 수익 보는 때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얼굴이 굳어졌지만 애써 웃으며 물었다. 


  “그러면 너 같으면 어디를 보겠어?” 

  나의 질문에 S는 대답했다.

  “나 같으면 차라리 한강변 아파트를 보겠어.”


  한강변? 남편이 항상 말하던 그 한강변 아파트?

  존재감만으로도 엄청나서 언제나 저 멀리,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한남 대교 주변의 거대한 아파트 군단? 우리가 감히 그 한강변 아파트를?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웬일인지 다음 순간 ‘못할 건 또 뭐야?’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대치동 재건축까지 봤는데 압구정동이라고 못 볼 건 뭐겠어?’ 갑자기 용기가 났다. 압구정 아파트도 결국 아파트일 뿐이고, 압구정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손을 뻗치면 못 닿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가자. 이왕 고생할 거 각오했는데, 여기까지 왔으면 크게 해야지.’

  그렇게 우리는 압구정으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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