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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May 18. 2024

<이방인>

부조리한 세상에 던지는 목소리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어머니를 매장한 다음날 여자 친구와 극장에 가고 동침하고 해변에서 수영을 즐긴다. 그는 친구 레몽과 아랍 사람들과의 다툼에 휘말리게 되고, 우연히 아랍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태양이 눈이 부셔서 방아쇠를 당겼다는 뫼르소의 설명은 법정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그가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그 이후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들이 부각된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과연 그는 무엇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은 걸까? 사람을 쏘아 죽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기 때문일까?


  뫼르소의 세계는 평범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여자 친구, 그리고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들이 있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연의 연속으로 그는 한순간에 살인자가 된다. 이 우연이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권총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은 레옹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살인자가 된다. 이 기이한 살인 사건에는 살해당한 사람은 있지만 고의를 가진 살인자는 없다. 이런 부조리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명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회는 '합리적인 가면을 쓸 것'을 강요한다. 슬프지 않아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보여야 한다. 결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사형수는 죄책감을 느끼고 참회해야만 한다. 가해자가 없고 피해자만 있다면 가해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세상의 부조리함을 외면하는 방식이다. 


  뫼르소는 이러한 가식을 거부한다. 그는 단순하고 건조하게 자신이 진짜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가 말한 모든 것은 그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참회할 것을 강요하는 신부 앞에서 자기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옳았다고 소리칠 수 있다. 


  획일적인 틀 속에서 움직이는 사회는 이런 이방인의 진심 어린 외침을 감당할 수 없다. 표준화된 시스템에 거슬러 자신의 진실 된 목소리를 내는 그의 존재는 사회에 위협적이다. 그래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방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알베르 카뮈가 80여 년 전에 던진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 삶이 존재하는 한 부조리한 사회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내게는 나에 대한 확신,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당신보다 더 깊은 확신, 내 삶과 다가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난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있어. 이 진리가 나를 굳게 붙들고 있는 만큼 말이야. 나는 전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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