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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n 02. 2024

보험은 어렵다

보험때문에 화 난 이야기 1

 최근 실손보험과 관련해서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보험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 할까한다.




  일단 인정하자. 보험은 어렵다. 보험은 온통 숫자다. 말해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금융상품이라면서 왜 돈이 불어나기는커녕 내가 낸 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건지, 받는다 해도 왜 오래 기다려야 하고 그것도 이자가 쥐꼬리만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다들 보험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보험 없이 사는 건 어쩐지 불안하다. 


  그래서 나도 보험에 들었다. 내가 보험에 가입하는 모습은 대충 이러하다. 설계사가 특정 보험 상품에 대해 뭐라 뭐라 열심히 설명한다. 하지만 담보가 어쩌구 갱신납이 저쩌구 하기 시작하면 이미 겁에 질린다. 여기다가 숫자까지 길게 붙으면 머릿속까지 하얘진다. 설계사 앞에서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된다. 마침내 여기저기 서명하라는 데 잔뜩 사인하고 나면 며칠 뒤 집으로 보험 증서가 배달된다. 대개는 멋진 가죽 커버가 있는 파일에 끼워져 있다. 두툼한 보험 증서를 보면 다시 살짝 겁이 난다. ‘몇 번 사인한 것밖에 없는데 뭐가 이리 두껍지?’ 예의상 한번 들춰보긴 하지만 그뿐이다. 책장에 꽂아놓고 나면 곧 잊어버린다. 매달 얼마씩 내야 한다는 사실만 간신히 기억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곧 잊어버린다. 다행히 자동이체를 설정해 둔 덕에 보험료는 차질 없이 나간다.




  

  이런 식으로 몇 개인가 보험을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남은 건 종신보험이랑 실손보험 두가지였다. 그렇게 보험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언제나 내 생활의 평화를 깨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갑자기 ‘보험 리모델링’이란 걸 해야 한다고 하면서 종신보험을 해약하자고 했다. 종신보험은 죽어야 받는 돈이니 쓸모없는 보험이라는 거였다. 나는 ‘보험은 해약하는 게 아니다, 지금껏 낸 게 아깝다’고 말렸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간신히 어르고 달래서 상대적으로 보험료를 적게 납부하는 내 것만 해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다음 해, 남편이 덜컥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이 쓸데없다고 한 종신보험에서 3,000만원이 암 진단금으로 나왔다. 해지하자고 펄펄 뛸 때는 언제고 진단금이 나오니 남편 얼굴이 싱글벙글이었다. 이제껏 보험 든 보람이 있다고 했다. 나도 옆에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며 맞장구쳤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은 내가 고집부린 덕에 종신보험의 암 진단금 혜택을 받았지만 나는 남편 때문에 그 혜택을 전혀 못 받게 되었다. 갑자기 세상 억울했다. 마음 같아서는 남편 등짝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차마 암 환자에게 그럴 수는 없어서 대신 말로 다다다다 쏟아부었다. 남편은 멋쩍은 얼굴로 ‘내가 이럴 줄 알았나’ 했다. 


  이제 나한테 남아 있는 거라고는 실손보험 달랑 하나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15년 만에 먼지 쌓인 증서를 꺼내 살펴봤다. 다행히 보장 내용에 암 진단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유~ 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실손보험만은 꼭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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