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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n 04. 2024

나는 봉이었다

보험때문에 화 난 이야기 3

  어처구니가 없었다. 15년 만에 내 보험 내용을 보고 난 감상이었다.


  내 보험은 보험사 말처럼 보장 폭도 크고 내용도 다양했다. ‘과연 1세대 실손이군.’ 보험료가 부담되긴 하지만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문제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여기저기 중복 보장에, 이제는 필요 없어진 보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슬슬 입 주위가 굳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내 보험은 온통 3년 납 3년 갱신 특약 투성이였다. 다른 보험사에서 근무하는 아는 지인은 내 말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무했다.”


  3년 납 3년 갱신 특약의 문제는 3년 만기가 될 때마다 보험료가 변동되어 전체적으로 보험료가 많이 오르게 되는 구조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료가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뒤늦게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얼마나 호구처럼 보였으면 이랬을까? 상담을 위해 보험사에서 연결시켜 준 새 설계사는 그때는 그런 보험이 최선이었고 나뿐만이 아니라 가입자 대부분이 보험을 잘 모른다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 말에 오히려 더 분노가 치밀었다. 보험사는 보험료 상승의 원인을 병원과 일부 보험 쇼핑족한테 돌리기만 했지 정작 자기들이 가입자들의 무지를 이용해 처음부터 보험료가 많이 나오는 구조로 보험을 설계해서 판매한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결국 보험을 잘 모른다는 죄로 가입자 대부분은 봉이었던 셈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15년 전에 이 보험을 판매했던 설계사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씩씩거리는 내 목소리에 새 설계사가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저, 그분 안 좋게 끝나셨어요. 그래서 제가 고객님을 담당하게 된 거에요,” ‘안 좋게 끝났다’라는 말이 실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인과응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남에게 정직하지 않게 상품을 판매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세상에 정의가 있긴 한가 보다.’ 울분에 차서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호기롭게 보험을 해약했을까? 시시한 결말이긴 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보험을 해지하는 대신 4세대 보험으로 전환하는 편을 택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보험 따위 내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험을 해지하면 꼭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는 속설도 무섭긴 했다. 일단 보험료 부담이 덜한 4세대로 전환해서 시간을 좀 더 벌어보기로 했다.


  입맛이 씁쓸한 사건이긴 했지만 교훈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넋 놓고 보험만 믿지는 않을 거다. 개인 의료 통장을 만들어 매달 조금씩 돈을 모을 생각이다. 보험은 보험일 뿐 나는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봉 노릇은 사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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