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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n 09. 2024

<시녀 이야기>

'길리아드'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캐나다의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SF 장르 소설이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길리아드’라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이름과 과거, 자유, 언어까지 빼앗긴 한 여성이 살아가고 투쟁하는 모습을 그렸다.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권력에 의한 억압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19년 발간된 속편, <증언들>은 부커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오브프레드’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그 명칭은 ‘프레드의 소유물(of Fred)’라는 의미를 나타낼 뿐 진짜 이름이 아니다. 과거 ‘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여성은 이제 ‘오브프레드’가 되어 출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녀’로 살아간다. ‘오브프레드’가 사는 세상은 암울하다. 마치 구약 성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는 사령관이라 불리는 나이 든 남성들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로 짜여 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남성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이다. 사회는 여성들이 이런 처지가 된 원인은 과거 그들의 방종 때문이었다고 교육한다. 그 결과 여성은 서로를 비난하고 질시하며 살아간다.  


 <시녀 이야기>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세계다. 주인공은 아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생존과 직결된 이유 때문이다. 모성애는 나중 문제다. 정신적 쾌락을 위해 성생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 번식을 위해 정신은 침묵을 강요받는다. 시녀는 이러한 모습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주인공은 시녀를 간단히 정의한다. “우리는 두 발 달린 자궁이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 다니는 성배다.”(p.238)


우리는 두 발 달린 자궁이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 다니는 성배다


  소설을 읽으며 어딘지 서늘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오브프레드’가 겪는 시선과 대우는 어딘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도 과거형이었던 적이 없다. 최근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보라. ‘길리아드’와 21세기 현재에서 차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SF 디스토피아 소설이 현실에 대한 거울인 이유이다.   


   그러나 희망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오브프레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브프레드’, 혹은 ‘오브무엇(of whom)’으로 남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이 선택한 저항의 방법은 이야기다. 그녀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녀의 몸부림은 단순히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쓸려가기를 거부한 민초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절대 격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저항, 끝끝내 자신으로 남아 있으려는 의지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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