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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Oct 21. 2024

싱가포르에서 생긴 일

도마뱀이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걸 봤다

  지난주, 싱가포르에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봤다. 갑자기 길 가 풀 속에서 도마뱀이 튀어나오더니 바퀴벌레를 입에 휙 낚아채고는 후다닥 건너편 풀 사이로 사라졌다! 그것도 사람 많은 오차드 거리의 럭키 플라자 앞에서! 싱가포르에 자주 왔지만, 심지어 몇 년 살기도 했지만, 도마뱀이 바퀴벌레를 사냥하는 장면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폰을 꺼내 사진 찍을 틈도 없었다. 한편으론 어안이 벙벙해서 웃음만 나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때 너는 어디에 있었니? 나와서 바퀴벌레 좀 잡아 주었으면 할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싱가포르에는 3년을 살았다. 싱가포르는 질서를 잘 지키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사람들은 싱가포르에 대해서 온통 좋은 이야기만 했다. 거리는 깨끗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영어와 중국어를 같이 쓰기 때문에 아들에게 두 언어를 한꺼번에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전에 살던 홍콩에 대해서는 지저분하고 사람 많고 좁다고 말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긴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다들 잘됐다고,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직접 살아본 싱가포르는 기대했던 것만큼 깨끗하지도, 질서를 잘 지키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남편이 그 업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 큰 바이오 단지 옆에 있는 나 홀로 콘도에 살게 되었다. 그 바이오 단지는 계속 확장 중이었던 관계로 대형 건설 공사가 계속 있었다. 그 때문에 특별히 소음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크레인과 공사장 차, 그리고 건설 인부들을 늘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에는 괜찮았지만, 밤이나 공휴일이 되면 집 옆 공터에는 과자 포장지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곤 했다. 아마 인부들이 쉬면서 먹고 그냥 버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청소부의 혼이 씐 듯했던 남편은 그런 쓰레기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번 주우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뭐가 깨끗한 나라라는 거냐고, 이 과자 봉지 여기저기 버려둔 것 좀 보라고 했다.      


  저렴한 공교육으로 중국어와 영어를 같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들이 전학할 학년이 마침 6학년이었다. 싱가포르 공교육 체계에서는 6학년에는 전입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 입시 시험이 6학년에 있기 때문에, 학교 합격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 편입생은 6학년에는 받지 않는다는 거였다. 느닷없이 학년을 하나 낮추게 생기자 난감해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국제학교에 아들을 편입시켰다. 좋은 국제학교 학비는 어마어마했다. 학비만 비싼 게 아니라 자리가 없어 당장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신 선택한 학비가 좀 저렴한 국제학교는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막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학교 친구들이 손을 씻지 않고 다니는 나쁜 습관을 배워 왔다. 실컷 밖에서 놀고서는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고 다니다 결국 수족구에 걸려 결석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스의 경험 때문에 항상 체온을 체크하고 손 씻기를 강조하며 위생 관리에 철저했던 홍콩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집에서는 개미가 계속 나왔다. 처음 한두 마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방에서 거실을 가로질러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기겁을 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개미를 제거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아무리 벽과 바닥을 깨끗이 닦고 락스도 발라 봤지만 소용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개미 약이란 약은 모조리 다 써 보다시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개미 떼는 사라졌지만 결국 뭐가 효과 있었던 건지 끝내 알지 못했다. 개미 이외에도 게코(도마뱀붙이)도 간간이 출몰했다. 개미와 게코가 있으면 바퀴벌레는 없다고 해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주방에 바퀴벌레가 보였다. ‘역시 그런 말도 다 헛소문이었구나. 우리 집 게코는 뭐 하나. 필요할 땐 안 보이네’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 1층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바닥에 뭔가 검은 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매미 정도의 크기였는데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길에서 바퀴벌레는 보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기에 속으로 ‘쯧’ 하며 살짝 피해서 지나갔는데 어쩐지 한 발짝 한 발짝 갈 때마다 점들이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에, 1층 필로티의 도로와 벽, 천장이 온통 바퀴벌레 천지인 게 아닌가! 여기도, 저기도, 바퀴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나는 얼이 빠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조심스레 뒷걸음질 친 후 미친 듯이 몸과 머리를 털며 황급히 로비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 바로 아래 1층이 하필 이 콘도의 쓰레기 집하장이었는데, 청소차가 쓰레기를 수거하러 왔다가 쓰레기를 모아둔 큰 통을 쳐서 부서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속에 살고 있던 바퀴벌레들이 죄다 사방으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콘도 관리실에서 조치를 취한 건지, 청소업체에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 시간 후 바퀴벌레는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며칠 동안은 간혹 바퀴벌레가 눈에 띄곤 했다. 그 지저분하다는 홍콩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깨끗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바퀴벌레 폭탄이라니 황당했다.   

우리가 살던 콘도(출처: property guru)

   

 싱가포르에서 안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에피소드들이다. ‘왜 그럴까’, 종종 생각해 봤다. 결론은 기대치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어지간히 좋은 걸로는 마음에 차지 않았던 거다. ‘그 정도 깨끗한 건 당연한 거다. 싱가포르라면 이 정도 질서 의식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다른 곳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단점을 크게 보이기 했다.. 반면 홍콩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아예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반대로 작은 장점에도 감탄하고 다녔다. 그래서 홍콩을 떠날 때는 싱가포르와는 반대로 아쉬운 마음만 가득했다.


  결국 싱가포르는 잘못이 없었다. 원인은 우리한테 있었다. 싱가포르도 사람 사는 곳일 뿐이었다. 세상 사람들 말처럼 ‘지상 천국’ 같은 나라는 없었다. 겉으로는 깔끔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지저분할 곳은 지저분하고 적당히 더러울 곳은 더러운 것이 다른 나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비행기에서 내려 창이 공항에 들어서면 마치 호텔 로비 혹은 카페 같은 공항 분위기에 여전히 기분이 좋아진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늘어선 도로, 화려한 오차드 거리를 보면 싱가포르의 속살을 알고 있는데도 또 깜박 속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있다. ‘와, 정말 멋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싱가포르를 이렇게 부른다. ‘이미지 메이킹 하나는 정말 잘하는 나라.’     


마리나 베이 샌즈. 겉으로 보기에 싱가포르는 화려하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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