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내 취향
요즘 싱가포르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필수적으로 '비샤 커피'를 사 오는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금 그 손에 바샤 커피 대신 (어차피 같은 회사이긴 하지만) TWG 쇼핑백이 들려 있곤 했다. 그 외에 카야 잼, 벵가왕 솔로 쿠키 등이 싱가포르 여행의 대표적인 '사 와야 할 것' 목록으로 꼽힌다.
나도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 초에는 그런 것들, 즉 '싱가포르에 가면 사야 하는 것들'을 샀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요즘은 싱가포르에 있는 것들은 한국에서도 대충 다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가도 굳이 살 것도 그다지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로 마트를 돌며 꼭 필요한 것들을 사 가지고 오는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런 것들을 샀다.
-올드타운커피
나의 소울 푸드, 아니 커피다. 싱가포르에 가면 항상 산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동남아시아 믹스 커피의 '찐한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수프리모', '네슬레', '입호' 등 브랜드가 많지만 이것저것 먹어 본 결과 그래도 가장 '클래식'한 올드타운 커피가 내 입에는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사실 올드타운 커피의 고향은 싱가포르가 아니라 말레이시아다. 그래도 동남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격은 마트 커피 중 가장 비싼 편이다. 모르긴 몰라도 맛이 가장 좋거나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크거나 한 모양이다.
마트에 가면 거의 항상 1+1 행사를 한다. 페어 프라이스(Fair Price)에서 1+1으로 해서 13-14달러 정도 한다. 콜드 스토리지(Cold Storage)에서 사면 1달러 정도 더 비싸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페어 프라이스에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
마일로
싱가포르 사람들은 마일로를 정말 많이 마신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싱가포르 사람들에게는 마일로가 일종의 '건강 음료+초콜렛 맛' 정도가 아닌가 싶다. 어지간한 패스트푸드점, 호커 센터에는 모두 음료 메뉴에 마일로가 있다. 마트에서 파는 상품 종류도 여러 가지다. 단백질 추가, 설탕 조금 등등.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믹스 커피를 마시지만 여기서는 1일 1마일로 인 모양이다. 심지어 믹스 커피는 1+1 행사를 하는데 마일로는 행사도 않는다. 가격도 믹스 커피보다 약간 비싸다. 겉보기에는 핫초코 분말 같지만 직접 마셔보면 그보단 밍밍한 것이 뭐랄까, 단백질 음료 초코맛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싱가포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워낙 싱가포르 사람들이 많이 마시기도 해서 싱가포르의 대표 기념품(?)으로 손색이 없는 듯하다. 저렴하게 싱가포르를 기념하는 물건으로는 제격이다. 그래서 요즘은 싱가포르 갈 일이 생기면 올드 타운 커피와 함께 하나씩 집어 온다.
-타이거밤 모기 패치와 스프레이
곧 11월인데도 모기가 기승이다. 밤마다 몇 마리씩 때려잡고 있다. 덕분에 모기 기피제와 전자 모기향을 요즘 제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타이거밤 모기 패치와 스프레이는 써 본 모기 퇴치 제품들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모기 기피제는 뭔가 상쾌하지 않은 오렌지향에 뿌리면 바닥이 미끈거려 실내에서 쓰기가 상당히 번거롭지만, 타이거밤 제품은 특유의 강한 풀향에 산뜻하다.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 타이거밤 패치를 셔츠와 바지에 각각 하나씩 붙이고 나가면 아무리 풀숲을 걸어 다녀도 웬만해선 벌레에 물리지 않았다. 지금은 잘 때 모기한테 물리지 않기 위해 잠옷 위에 붙이거나 저녁 무렵 한강변이나 나무 많은 곳으로 산책 나갈 때 붙인다.(누가 효과적인 모기 퇴치 방법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가격은 좀 비싼 편이지만 값어치를 한다. 이번에 22개들이 큰 패킷으로 하나 샀는데, 한국에 와서 후회했다. 하나 더 살 걸.(이놈의 모기!)
부모님을 위해서 파스를 사는 것도 좋다.(역시 가격은 착하지 않다)
-초콜릿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초콜릿 종류를 다양하게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해외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초콜릿을 사냥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는 아쉽지 않은 곳이다.
싱가포르 사람들도 초콜릿을 많이 먹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브랜드, 보지 못하던 브랜드 등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브랜드라도 못 보던 맛이 있기도 하다. 특히 뉴질랜드 초콜릿인 휘태커스의 경우 싱가포르가 종류가 더 다양한 것 같다. 거리상 싱가포르가 뉴질랜드에서 더 가까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영국 초콜릿인 캐드버리 초콜릿도 여러 종류가 보인다.
나는 초콜릿을 살 때는 '코코아 트리(Cocoa Tree)'처럼 관광객을 위해 특화된 듯한 초콜릿 전문 매장보다는 콜드 스토리지에 가서 산다. 초콜릿을 살 때만은 페어 프라이스 대신 콜드 스토리지에 가야 한다. 같은 콜드 스토리지라도 이왕이면 매장이 큰 곳, 외국인이 많이 다니는 곳이 좋다. 다카시마야 지점, 젤리타(Jelita) 지점 등을 추천한다.
그 외 영국 체인인 막스 앤 스펜서 식품 매장에 가서 초콜릿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격은 비싸지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초콜릿을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초콜릿을 보다 보면 다 사고 싶지만 그럴 순 없기에, 항상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이번에 산 건 휘태커스와 캐드버리 블록 초콜릿, 그리고 선물로 나누어 줄 초콜릿을 샀다.
-닌지옴 시럽 스틱
닌지옴 시럽은 홍콩에서 알게 되었다. 홍콩에서 닌지옴은 종합 감기약 정도 되는 것 같다. 조금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목이 아플 때 닌지옴 시럽을 한 스푼 먹으면 박하 성분 때문인지 목이 화~해지면서 몸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물론 몸이 정말 아프기 시작하면 닌지옴만으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예방 및 플라시보 효과로는 좋은 것 같다. 또 한방 성분이기 때문에 타이레놀, 아스피린 등과는 달리 먹는 데 거부감도 덜하다. 물론 이 모든 건 내 생각일 뿐 전문가가 본다면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른다.
닌지옴은 싱가포르에서도 watson, guardian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인기 있는 제품이라 시럽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1포씩 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포장된 시럽 스틱, 캔디, 스프레이도 있다. 그래도 역시 시럽을 한 스푼 떠서 먹는 게 가성비나 효과 면에서 제일 좋긴 하다.
문제는 시럽을 사자니 유리 용기라서 너무 무겁다. 그렇지 않아도 캐리어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한참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그냥 스틱형으로 샀다. 곧 겨울이니 몸이 안 좋을 때 하나씩 챙겨 먹을 생각이다.
-TWG 차와 바샤커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홍차에는 관세가 40%나 붙는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해외여행을 할 일이 생기면 꼭 티백을 사 가지고 온다. 왜 이렇게 관세를 높게 책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국내 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겠지) 그렇다고 오설록 같은 국산 차가 싼 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국내에서 좋은 품질의 티백을 사려면 부담만 될 뿐이다.
요즘은 TWG를 백화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역시나 본고장답게 싱가포르에서 사는 게 싸다.
이번에 가서 보니 다카시마야 백화점 식품관의 TWG 매장에서 티백 한 상자는 30달러였다. 창이 공항 면세점에서 같은 상자가 27달러였다. 며칠 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식품관에 있던 TWG 티백 한 상자에 붙어 있던 가격표는 37,000원이었다! 대충 봐도 관세만큼 더 비싸다. 그러니 티를 좋아한다면 싱가포르에 간 김에 집어오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이번에는 TWG 이외에도 평소에 편하게 마실만한 다른 브랜드의 티도 몇 개 더 집어왔다. 다 국내에서 이름을 들어 본 브랜드들인데 마트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바샤 커피도 안 사 오면 아쉬울 것 같아 공항에서 하나 집었다. 바샤 커피 매장에는 손님 95%가 한국 사람인 것 같다. 다들 여러 상자씩 사지만 나는 늘 하던 대로 딱 한 상자만 집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향에 도전해 봤는데 괜찮았으면 좋겠다. 바샤 커피 드립 백 한 상자 가격은 TWG와 같다. 공항에서 매장도 바로 옆이라 쇼핑하기 편하다.
-올드 셍 총 쿠키
이건 내가 산 건 아니고 선물 받은 거다. 예전에 싱가포르에 살 때 잠시 한국어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첫 학생이었던 싱가포르 주부는 이제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 명품 브랜드의 한국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하나 있는 아들은 우리 아들과 같은 학교, 같은 과다. 우연이라기엔 굉장한 인연이다. 아들만 싱가포르에 보낸 나로서는 그녀는 내가 의지할 만한 기둥인 셈이다. 그래서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이번처럼 싱가포르를 방문할 일이 생기면 얼굴을 보곤 한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항상 선물을 준비해서 나와서 고맙기 짝이 없다. 이번에 가지고 온 것은 '올드 셍 총'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쿠키였다. 내가 이름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해 있자, 그녀는 '로컬 브랜드인데 아주 맛있다'라며 꼭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 맛'인데 달콤하고 다른 하나는 '락사 맛'이라고 했다. 앞에 말한 건 무슨 말인지 끝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대충 고개만 끄덕였지만 뒤의 단어는 정확히 귀에 꽂혔다.
'락사 맛?!'
'락사?' 싱가포르 전통 국수? 많은 한국 사람들이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그 국수? 나는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향이 아주 강한 그 국수? 어떻게 그 국수가 쿠키가 될 수 있지?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열심히 먹어보라고, 맛있다고 자신 있게 권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포장을 열었더니 쿠키가 들어있는 틴이 아주 고급스러웠다. 금장 무늬가 싱가포르 로컬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제야 락사 맛 이외에 다른 쿠키의 맛을 확인했다.
'굴라 멜라카(gula melaka)'
검색해 보니 굴라 멜라카는 대추야자를 절인 설탕으로 말레이시아, 더 정확히는 말라카 지역의 특산품인 듯했다. 그렇다면 단맛은 확실할 터였다. 하나 뜯어먹어 보니 우리가 잘 아는 버터 쿠키 맛이었다.
대망의 락사 맛 쿠키는 어떤 맛이었을까?
오! 그녀 말처럼 정말 괜찮았다. 말린 오징어 맛이 나는 쿠키라고나 할까, 뭔가 설명이 잘되지 않지만, 단 건 꺼려하는 남편한테 줬더니 '냠냠', 잘 먹었다. 남편 말로는 뭔가 오묘하지만 자꾸자꾸 입에 들어가게 되는 맛이라고 했다.
검색해 보니 올드 셍 총은 1965년부터 있어 온 싱가포르 쿠키 브랜드로 락사 맛 이외에도 다양한 단맛, 짠맛의 쿠키를 만드는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잘 찾는 제품은 아니지만 싱가포르 고유의 멋을 간직한 무언가를 찾는다면 안성맞춤일 듯한 쿠키였다. 마리나베이 샌즈를 비롯해 지점이 여러 군데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러 맛을 보고 구입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월병
지난번 브런치 글에도 한번 썼던 월병을 받았다.
추석 전에 싱가포르에 가게 되면 꼭 사려고 했지만 결국 10월에 가게 되면서 포기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아들한테 부탁했더니 아직 월병을 파는 곳들을 수소문해서 한 상자 사 두었다. 월병 가격은 결코 싸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용돈을 모아 인턴과 학교 수업 때문에 바쁜 일정에도 엄마 아빠를 위해 월병을 사 둔 아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얼마 만에 보는 월병인지!
아들이 사 둔 건 로터스 맛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 먹어버리려다가 나처럼 월병을 좋아하는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에게 하나씩 보냈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된다, 살이 자꾸 쪄서 적게 먹는다 하시던 친정아버지는 내가 '월병 보내 드릴까요?' 하자 '응, 당장 보내라.' 하셨다. '소화가 잘 안 되신다면서요. 살이 자꾸 쪄서 적게 드신다면서요.' '응, 그렇지.' '그래도 월병 보내드려요? 이거 칼로리가 엄청 높은데.' '응, 보내.' 하셨다.
그래서 월병을 받으시면 4조각 잘라서 하루에 한 조각씩 드시라고 신신당부하고선 보냈다.
이틀 뒤 맛이 어떠셨나 궁금해서 다시 전화해서 물었다.
'월병 어떠셨어요?'
'월병? 그거 벌써 다 먹었다.'
'예? 이틀 만에요? 제가 4조각으로 나눠서 하루에 한 조각씩만 드시라고 했잖아요.'
'어... 엄마한테도 한 조각 주고 나눠 먹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따로 전화드려 물어봤더니 엄마는,
'월병? 나는 구경도 못했다. 한 조각 입에 대긴 했나? 모르겠다.' 하셨다.
남동생한테도 물어봤더니
'하루 이틀 만에 홀라당 먹었지.' 했다.
월병 맛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