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책은 좋습니다.
일단 읽고 있으면 사람이 근사해 보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들고만 다녀도 지식인 같아 보입니다.(이 맛에 책을 못 끊습니다.)
책 든 안경잡이는 아, 저 사람 책 많이 읽다 저리 됐나 봐. 안타깝습니다.
스마트폰 든 안경잡이는 저 인간 내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인과응보입니다.
출퇴근 시간도, 약속에 늦는 친구를 기다릴 때도, 아내님이 세 시간씩 쇼핑하셔도 괜찮습니다.
낭비되는 것 같은 시간을 생산적인 시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늦게서야 책 읽는 취미를 가졌습니다.
아마 34살, 35살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계기는 우연했습니다.
자격증 공부를 하는데 제가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포커스 리딩이라는 속독법 책을 샀습니다.
이제 교보문고는 망했습니다. 제가 순식간에 책을 다 읽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뉴런은 뇌에 너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이것저것 잡생각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속독법은 깨우치지 못했습니다.(아흑, 내돈)
하지만 배운 것은 있었습니다.
책을 빨리 읽으려면 분명한 목적을 갖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독법 자체보다, 왜 책을 읽는가를 그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됐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포커스 리딩에는 많은 좋은 추천책들이 있었습니다.
추천책들은 자기 계발서들이었는데 대부분 좋았습니다.
사실 대학생 시절 자기 계발서 두어 권을 읽고서,
"당연한 소리를 참 애써서 써놨네." 했던 저였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제게 좋은 책을 고르는 눈도 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책을 읽다 보니 책 읽기에 흥미가 생겼고,
곧 다독에 대한 야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야망에 비해 의지가 약했던 저는 일주일에 한 권씩 만이라도 어떻게든 읽자고 했습니다.
그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면 더 좋습니다.
책은 도끼다.
박웅현 님의 책입니다.
찍히고 때 탔습니다.
아내가 10여 년 전에 사서 저도 함께 읽었던 책입니다.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째 읽은 책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초반부에 소개되는 프란츠 카프카의 글입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얼어붙은 바다를 상상해 봅니다.
거대하고 거대하고 거대한 얼음덩이. 얼어서 꿈쩍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도끼 하나에 의해 깨지고 녹습니다.
조금 깨졌나 싶더니 곧 댐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지고 녹기 시작합니다.
곧 거대하고 저항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물들이 일렁입니다.
넘실대고, 파도도 칩니다. 자유로운 해류도 됩니다.
제 굳어있던 편협한 생각들이, 관념들이, 고집들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을 상상합니다.
뜻밖의 도끼 하나에 제가 알던 세상이 깨지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책을 통해 제가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생각들을 만나고 그것이 이해되는 순간.
제가 책을 읽으며 가장 신나는 순간입니다.
정말 짜릿한 순간이지요.(무릎 탁!)
육아 얘기로 넘어가 봅니다.
이곳 필리핀의 초등학생은 행복합니다.
공부는 뒷전입니다. (설마 우리 애들만?)
학교에서도 "애들은 재밌게 놀아야지."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분위기에 휩싸여 덩달아 놉니다. (야호! ......아내님 눈치가 보입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어김없이 주는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책 읽기입니다. 영어든, 모국어든 관계없습니다.
국영수가 아니라 책을 읽으라는 숙제. 그게 참 좋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를 알 수 있고, 세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좋은 어른들이 응당 아이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들입니다.
유튜브나 게임하는 딸들에게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만하고 책 좀 읽어라."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하시지 않은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유일한 잔소리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보태봅니다.
"공부는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책은 읽어라."
"책은 유튜브와 다르다. 만들어진 동기가 우선 다르고, 깊이도 다르다."
"만드는 사람이 숙고한 시간만큼 많은 것을 담아낸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 네게 남는 것도 많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낀 그 짜릿한 순간을,
저희 딸들도 꼭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꿀팁) 책 읽기가 어려운 분들께.
1) 공과금 내듯 완독날짜를 달력에 박아놓고 읽어야 합니다.
2) 읽고 나서 반드시 스마트폰 메모장에 책 제목과 완독날짜, 간단한 느낀 점, 그리고 친구에게 추천할만한 책인지 아닌지를 적습니다. (이게 쌓이면 기분이가 조크든요.)
3)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경만 고쳐 써도 지성인이 된 것 같은 느낌(착각)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