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드디어 필리핀으로 떠나는 날.
저는 홀로 파란색 단프라박스 2개에 이민가방 1개 그리고 두 딸을 데리고 힘겹게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각각 25kg을 꽉 채운 짐들(도합 75kg)을 어찌어찌 겨우 들고 가던 저는
문득 그동안 쌓아온 전우애를 떠올리며 두 딸들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제 눈빛을 본 아이들은 알았다는 듯 “오! 아빠 힘세다!!”, “영차영차!!”라며
우렁찬 목소리로 저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공항 천장까지 응원의 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아아, 힘이 났습니다. 쪽팔림의 힘.(다들 아시죠?)
덕분에 저는 순식간에 짐을 나를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1mg도 도움이 안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동료들은 큰 힘이 되어주곤 합니다.
짐을 간신히 부치고 비행기에 오른 세 부녀.
아이들은 비행시간 내내 엄마 얘기를 종알종알거렸고,
초인적인 힘을 쓴 저는 충전을 위해 잠시 꿈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스친 한 생각 때문에 저는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습니다.
저희 짐 내용물이 적잖이 수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파란색 단프라 박스에는 주방용 쌍둥이표 칼(주부들의 페이보릿) 2개, 가위, CCTV 4개, 쿠쿠 전기밥솥, 상비약 한 상자, 마스크 4박스. 미니 금고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칼과, CCTV, 금고에 약물(상비약)까지...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카지노’가 떠오르는 조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입국심사에서 어떻게 영어로 대답하지? 혹시나 세관에 걸리면 영어는 어떡하지?'
사실 진짜 걱정은 영어였습니다.
영어가 부족한 저.
갑자기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무자격 영어 튜터로 두 딸들에게 생존영어를 가르쳤지만,
현지인들 앞에서 쭈그리가 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남은 비행시간 동안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선한 미소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승무원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지나갔습니다.
저는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다른 수상한 행동을 하는, 어쨌든 수상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저는 이미 화장품 모델급의 선한 미소를 장착한 상태였습니다.
'와라! 영어야!'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필리핀 입국심사도, 세관도 저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한 여름에(필리핀은 3,4월이 가장 덥습니다) 겨울옷 입고 다니는 모지리 세 부녀로 봤는지 무사통과 시켜줬습니다.
짐을 찾은 저희 세 부녀.
감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저는 도착 게이트가 열리면 'TV는 사랑을 싣고'의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뜨거운 가족 상봉이 연출될 걸로 생각했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는 그런 뜨거운 만남... 보기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는 그런 만남...
하지만 저에게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이 펼쳐질 리 없었습니다.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할 아내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착잡한 마음에 아내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10분 뒤에 도착요. 00게이트로 나와서 기다려요.”
저와 딸들은 게이트에서 나와 야자수와 이국적인 수목들을 보며 ‘야... 필리핀이다.’라는 공허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래, 1달 반을 기다렸는데 10분을 못 기다릴 쏘냐.’
한 여름 공항 밖. 시커먼 롱코트 중년 남자에 시커먼 겨울옷차림의 두 딸.
그리고 그 곁에 쌓여있는 커다란 단프라박스 2개, 이민가방 1개.(도합 75kg)
매우 불법체류자처럼 보이던 저희는 아내님을 기다렸습니다.
20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님.
이산가족상봉의 감흥은 땀과 함께 흘러내린 지 오래였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디예요?”
“나 공항 도착 했는데? 00번 게이트 앞.”
“어? 나도 00번 게이트 앞인데?”
“안 보이는데?”
저희가 있던 곳은 터미널 3. 하지만 아내님은 터미널 2로 가셨던 것입니다.
이미 늦으신 것도 부족해 터미널도 잘못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역시 큰 일을 하시는 분들은 사소한 디테일에는 조금 약하십니다.(교훈)
우여곡절 끝에 아내가 도착하고 드디어 상봉한 저희 가족.
딸들은 엄마가 나타나자 곧장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여태 더위에 지친 자신들을 어르고 달래주던, 그리고 끈끈한 전우였던 저는 바로 내팽개쳐졌습니다.
엄마 앞에서는 전우고 뭐고 없습니다. (아빠들 잘 들으세요.)
저는 조용히 기뻐하는 아내와 딸들의 모습 뒤로 마치 배경처럼 조용히 짐들을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보면 드라마틱한 장면이 이뤄진 셈이긴 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지만)
필리핀. 심상치 않았습니다.
첫 단추부터 뭔가 삐그덕 거린 데다, 제 전우들은 곧장 저를 내팽개쳤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필리핀 생활이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