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멈추었던 해외여행도 이제 조금씩 가능하게 되었고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보며 적어도 아이보다는 영어를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위기의식도 한몫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난 영어 선생님은 한국인이지만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를 하셔서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양국의 문화를 잘 알고 있어서 언어의 미묘한 차이도 잘 이해하고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일주일에 1~2편의 영어 일기를 써오는 숙제를 내주셨다. 일기를 통해 문법, 어휘를 교정할 수 있고 또 서로 이야기 나눌 주제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써보는 일기라 뭘 써야 할지 막막했고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중 특별했던 기억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내 하루하루는 거의 비슷한 루틴으로 돌아가서 일기로 쓸만한 소재는 금방 바닥이 났고 나는 일기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매주 한 번 이상은 일기에 쓸만한 소재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비는 날은 전시회를 방문하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산책 하러 나가기도 했다. 지루하게 반복되던 일상에 하나씩 새로운 이벤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혹시 일기에 쓸만한 것은 없는지를 돌아보며 하루하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어린 시절 선생님들이 "일기 쓰기" 숙제를 내준 건 아이들에게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일기를 쓰기 위해 매일을 특별하게 만들라는 것 아니었을까.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귀찮은 일기 숙제라며 선생님이 내 하루를 왜 궁금해하실까 원망만 했다. 선생님의 깊은 뜻을 서른다섯에서야 이해를 하다니!!!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린 내 지난날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진다.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반복되는 하루일지라도 그 안에서의 의미를 찾고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원동력이다. 비록 일주일에 1~2편 쓰는 일기이지만 나는 그 일기를 위해 단 하루라도 특별한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내 일상이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고 무의식적으로 살던 날들을 보다 의식적으로, 능동적으로 살기 시작했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내 삶을 이끌어 나갈 걸 생각하니 일기가 가진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