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키친에, 손 닿는 모든곳이 예술의 흔적
* 본 편은 북큐레이션 서비스 <리딩리딩>에 연재를 기획했다가 여러 상황상 도저히 꾸준한 연재가 힘들 수 있을 듯하여 브런치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뉴욕 사람들의 독서문화와 취향을 아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공개합니다.*
뉴요커의 서재
셰익스피어가 키친에… “책은 양식이다.” 뉴요커 Chris
이전 에피소드에서 멘토링을 해주시는 뉴욕 문화부 공무원 출신 크리스를 잠시 언급한적이 있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설명 했었지만, 사실은 그외에도 YMCA, 미국 스칸디나비안 재단, 브루클린 미술관, 뉴욕 자연사박물관 등 뉴욕 문화계의 한복판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시던 분이예요. 은퇴후인 지금도 여전히 의미와 보람있는 자원봉사등으로 시간을 쪼개 바쁘게 보내시는 모범적인 뉴요커이자, 개인적으로 제게 많은 조언과 뉴욕 문화계 관련 소식과 업무관련 팁을 전수해주시는, 제겐 너무나도 감사한 멘토입니다. 책은 또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만날때마다 책 이야기와 소식이 빠지지 않아요. 그래서 뉴요커의 서재 1탄을 기획하면서 첫번째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센트럴파크 왼편에 위치한 Chris 집을 방문했습니다. 확실히 추수감사절 주간이 시작되는 날이라 공원 넘어가는 길이 많이 막혔어요,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느낌의 명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아요. 뉴스에는 올해 사상 최고인 5500만명이 이동을 한다고 하는데, 이정도는 거의 한국 인구수 아닌가요? 여기도 나름 민족대이동의 시즌입니다.
창문을 따라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라 햇살 가득한 Mid century modern 컨셉의 인테리어로 꾸민 집에서 크리스가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가구도 하나하나 정성껏 고심해 고르거나 주문하고, 용도에 맞추어 변형도 했다고 해요.
거실 한켠 작은 서가는 집주인의 관심사의 압축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특별 제작판 재즈 음반 시리즈, 뉴욕 건축 시리즈, 타이포 그래피, 미술, 도시, 영화가 줄지어 있고, 노구치 스탠드와 컨템포러리 작가의 판화가 걸려있습니다.
1920-40년대 타이포그래피 책에는 큐비즘 같은 작품부터 당대의 포스터, 간행물들까지 시각적,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해낸 결과물이 설명되어 있죠. 100년쯤 전에도 이런 세심한 디자인 요소까지 연구해내다니 그 결과를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행복한 세기를 살고 있다는 기분도 들어요.
웬지 이집에는 제가 좋아하는 재즈보컬리스트중에 상대적으로 잊혀진 헬렌 메릴도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소장하고 계신지 여쭈었더니, 그 가수가 낸 음반 모두 다 있다고 하시면서 제가 좋아하는 곡들도 틀어주셨어요. 목소리는 조금 갸냘프고 녹지만, 한번씩 들으면 요새 표현으로 “갬성”에 도취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개츠비가 살던 시절 재즈의 시대로 타임머신 타고 온것 같은 착각도 들만큼 책 셀렉션이며 집안 전체의 취향이 어떤 한 시기에 집중되어있을때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 서가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책 소개를 해주시면서 어찌나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던지, 경청하면서 틈틈히 열심히 사진도 찍었습니다.
위에서부터, 철학, 신학, 정치, 종교, 미술 등 전통 인문학 서적이 상단에, 중간 부분은 지금은 너무나 희귀한 LP음반이, 하단에는 조금더 최근의 인문학과 사회관련 서적이 정리되어있습니다.
특수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한 베리는 음악에 조예가 너무 깊은데, 수집한 LP 대부분이 음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일러스트라고 하구요.
제가 기존에 보아왔던 빌리 홀리데이 음반은 가수의 얼굴이 나온게 일반적이었던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레어템 같아요. 제가 커버도 너무 멋진 작품들이라 넋을 빼고 보니까 보물창고도 보여주셨어요.
옷장 하나를 여니, 이렇게 보물창고가 있지 뭐예요.여기는 CD인데 역시 스페셜에디션들로 가득하죠.
제가 아무래도 미술계에 있으니, 미술관련 책중에 뉴욕과 관련된 책을 골라 보여주셨어요. 뉴욕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브로드웨이 공연을 캐리커쳐로 표현해 뉴욕 타임즈 같은 매체에 기고한 사람의 작품이예요. 오른쪽 페이지는 말 안해도 뮤지컬 시카고인거 보이시죠? 딸 이름인 니나를 이미지 속에 숨겨 두었다고 해서, 또 한참을 숨은그림 찾기를 했네요. 작품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지만, 땡스기빙스럽게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화집이었어요.
여행관련 포스터 모음집이 있다고도 보여주셨어요. 철도가 잘 연결된 유럽에서 모든 길은 스위스로 연결된다고 강조하는 스위스 관광홍보 포스터인데, 구도와 색감, 텍스쳐 표현, 폰트까지 정말 스위스 방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에 설득되는 기분이예요.
그리고는 베리가 계속 키친을 보여주라고 재촉합니다. 혹시 주방에 차를 준비해두셨나 했는데, 웬걸요. 시리얼 두는 찬장에 책이 더 많아요!!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죠. 또 다른 칸에는 문학책에...
물리학, 생물학, 천체학 등 과학 서적에… 물리학이나 천체학은 고전을 읽다보면 연결지점이 있기도 한데 생물학은 조금 동떨어 진것 같아서 어떻게 생물학까지 섭렵하냐고 여쭈었어요. 몇해전 집근처 자연사 박물관에 자원봉사하면서 도와주다가 생물학 관련 강좌가 있어서 들을 기회가 있었대요, 그리고는 재미있어서 책을 조금 골라 읽었을 뿐이라먀 겸손하게 설명해주셨어요.
그리고 이 주방에서 유일한 조리기구로 쓰이는 전자레인지 위에, 드디어 셰익스피어가!! 하하하!! 이걸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제가 오늘 인터뷰를 책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싶다고 했었더니 고민하시다가 본인은 책으로 호기심을 풀고, 세상을 탐구한다고.. 주방에서 시리얼 챙기면서 고전이자 철학과 인간 본성의 기본을 곱씹는 분이지만, 절대로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계속 들어주시다가 절묘한 순간에 정말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는 태도도 너무 멋진, 쿨한 뉴요커로 인정합니다!!
사뮤엘 고쵸(Samuel Gottscho)라고 하는 사진작가의 My Misthic City라고 하는 사진집과 그의 작품인데요, 이 사진은 당시에 조지워싱턴 브릿지가 막 개통했을때 찍은거라 눈내린 센트럴파크 왼편에 다리의 조명이 보이는 거라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리고 이 집 책와 음반들의 특징은 책과 관련있는 신문기사가 압부분에 놓여있어, 이에 당시 사회에서 어떤 맥락으로 읽히고 추천되었는지, 또 어떤 부분을 특싱으로 하는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방식 같아요.
그리고 또 이렇게 예전의 뉴욕 얘기가 나와서 회상과 추억에 담소도 나누시고, 저는 손님이지만, 허락받은 자신감에, 친척집 놀러온 것 마냥 구석구석 사진도 찍고 책도 들춰보고 마음껏 구경했어요.
이 집은 곳곳에, 손닿는 모든 곳에 책이 있어요. 음악 틀어두면 소리와 울림이 공기에 녹아있는 것 처럼, 이 집 공기엔 글과 생각이 동동 떠다니는 것 같아요.
스타일리스틱하고 공간과 잘 배치되는 드로잉 판화 작품과 작가도 깊이있게 설명해주셨지만,
오늘은 책과 인생이 주제이니만큼 몇가지 질문을 드렸어요.
Q: 책의 구성이 너무나 다양합니다. 아무래도 인생의 궤적과 같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릴때 꿈, 학교 전공, 경력을 알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A: 아버지가 목사이셨고 어릴때는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아픈 사람 치료해주는 의사를 꿈꾸다가 커 가면서 내 성격과 선호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모르는 지구의 반대편 극동아시아 역사와 미술을 전공했지, 여기서의 극동아시아나 한국, 중국, 일본인데 왜냐하면 미국에서 지구의 반대편에 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서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자 공부로 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일을 조금 하다가 MBA를 가고 나는 문화, 예술과 관련된 것을 일로해야 더 행복한 사람인걸 알고 피츠버그를 떠나 뉴욕으로 와서 문화예술계에 몸담기 시작했어.
Q: 뉴요커를 협의로 정의해, 맨하탄 출신 및 성장, 거주로 뉴요커를 정의하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크리스는 원래 뉴욕 태생은 아니지만, (뉴욕생활 40여년)누구보다 뉴욕 문화와 예술분야에 애정이 커서 성취도 크고 이뤄내고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어마어마해서 뉴요커라고 인정안하는 사람이 없을걸로 보여요. 크리스의 뉴요커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될까요?
A: 이 도시의 도처에 널린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출신지, 인종 등에 상관없이 다 뉴요커라고 생각해. 꼭 부자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정도 직업 안정성도 있어야 할테고 문화를 이해하고 예술을 즐기는 기본 소양이 갖추어졌다면 뉴요커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살 거라는 생각을 해. 그리고 자격을 갖춘 뉴요커는 어느정도 문화관련 기관과도 관련이 있어. (예를 들자면 아주 작게는 금융맨이지만 미술관 멤버쉽으로 후원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또 지하철과 익숙하고, 효용을 추구하는게 뉴요커의 특징인 것 같아.
Q: 요새 새로운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나 방법을 공유해주시겠어요?
A: 이미 책이 많아서 꼭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면 뉴욕 공공도서관에 일주일에 한번씩 들러서 대여도 많이 하는 편이야. 특히 책을 고를때는 뉴욕북리뷰 갚은 서평 전문 매체를 참고하기도 해.
Q: 책으로 간접 경험도 많이 하고 지혜를 쌓는 것도 도움이 크게 되었겠지만, 혹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도 있었을까요?
A: 그럼 물론이지. 업무 특성상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게 정말 중요한 일이 었는데,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쉽게 공감대를 쌓고 대화를 나누어갈수록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어.
Q: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꼽아주시겠어요?
A: 대학교 1학년때 읽은 수잔 랭거(Susanne Langer)의 새로운 경향의 철학(Philosophy in a new key)이라는 책이 내 생각의 체계를 구죽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상징 형식이 역동적인 동작을 표현해, 감정을 전달하는 소통의 방식이다라는 아이디어가 너무 새로웠어. 철학이 단순히 생각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물리적인 세계로 확장되는 개념이 와 닿았어.
Q: 한국의 독자들에게 책을 추천해주시겠어요?
A: 수잔 랭거의 책이랑,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황금의 잔(The Golden Bowl). 이책은 5년에 한번씩 읽고 있고 현재까지 4번 완독했어, 인생, 예술, 실존과 재현, 인생 등에 대한 창의적이고 유니크한 표현까지 읽을수록 빠져들게 돼. 표면적 스토리의 내부에 촘촘히 짜여진 이런 본질에 대한 탐구가 아직도 흥미로워. 그리고 나보다 젊은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의 종류는 자서전과 회고록이야.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하거나 설정하는데 도움을 줄거야.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가며, 찬찬히 진화하는 크리스는 시인이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해준 시로 이번 대하서사와도 같은 뉴요커의 서재를 마무리 합니다.
We have felt the press of
desire the way a brook courses
over stone rippling with tactile
motion. But from hour to hour we
take things in absorbing impressions
that may later nurture thought,
like leaves of ivy faced to the sun
fueling life with light
Chris, A Lifetime Leaner and Poet
리딩리딩 매거진 섹션에 올렸던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독립서점> 시리즈는 1편은 무료로 공개되어있으며, 나머지는 멤버쉽 독자만 확인하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https://www.rglg.co.kr/magazine/1908222328470Smtjd7
2편. 움베르토 에코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한 서점, 스트랜드 (상편)
https://www.rglg.co.kr/magazine/1909061348305U0exNi
3편. 뉴욕의 독립서점이 이토록 건재한 이유는, 스트랜드 북스토어 (하편)
https://www.rglg.co.kr/magazine/1909202224265ODaDGT
4편.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은 거인, 프린티드 매터
https://www.rglg.co.kr/magazine/19100413355825Xn8ST
5편. 2019년 하반기 뉴요커의 이목을 끄는 책 두권
https://www.rglg.co.kr/magazine/1911082153066RrQ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