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
안식월을 시작하다:경계를 벗어나는 삼무행(三無行)
“무슨 계획이 있으신가요?”
안식월을 시작했을 때, 몇몇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세 가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삼무행(三無行)입니다.”
“삼무행이요?”
“네, 주로 걷기를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세 가지에 거리를 두는 겁니다.”
“다른 방식이라면, 평소 늘 하시던 걸 하지 않고 새롭게 하신다는 건가요, 어떤?”
“네, 평소 익숙했던 예배 공간을 벗어나 보는 것입니다. 아예 예배 시간을 멈추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차를 타고 가서 멀리, 오래 걷는 겁니다. 평소 익숙한 분야보다, 읽지 않던 책이나 낯선 분야의 논문을 읽고 새롭게 공부해 보는 겁니다. 그러니 제 삼무행은 평소 익숙한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일 하지 않기, 가까운 곳 걷지 않기, 익숙한 공부 하지 않기 뭐 이런 것입니다.”
“아, 흥미롭긴 하네요. 그런데 익숙한 것을 ‘하지 않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의외의 일들로도 안식월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쉼의 역설–“쉰다는 것”이 과제가 된 시대
“쉼은 당연한가?”
더 물을 필요 없는 질문이다. 누구나 쉼을 원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해서 곧바로 주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써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누군가 나에게 물을 것이다.
“쉼은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란 말인가요, 아이러니네요. 얻어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쉼이라니 말입니다.”
나는 안식월을 통해 이런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솔직히, 하루하루를 감당하는 것만도 버거운 시대다.
아침과 저녁, 눈 뜬 채로 붙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제대로 ‘쉼,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같은 이야기다.
“쉬자, 쉬어야 한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자신에게 당부하는 것조차
그저 상상 속 제안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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