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2)
안식은 철학이다–성찰과 저항의 사유
안식하고 나서야 몸으로 다시 확인했다.
안식은 단지 ‘쉼’이 아니라
몸을 완전히 자유하게 하는 삶의 방식이며,
온몸으로 ‘느끼는’ 통각이라는 것을.
더 나아가 사유의 토대이며, 궁극적으로 나의 철학이고 신학이었다.
현대 신학자 월터 브뤼그만이 설파했듯,
“안식은 저항이다.”
나는 동의했다. 그가 말한 저항을 프락시스(praxis)로 받아들였다. 즉 안식은 나의 삶의 질서에 대한 냉정한 자기 성찰과 다름없다고 인정했다. 더 나아가 나를 둘러싼 이 사회의 질서, 예를 들어 돈, 권력, 능력주의, 사회계급에 대한 냉혹한 자기비판이며 사회적 회심이라고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안식 안에서 이런 이해들을 추체험했다. 마침내 내 삶과 세계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born again) 갱생을 직접 체험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검은 안식’이라는 나의 창의적 개념으로 정립했다. 어느 날, 숲과 호수가 이어진 지방 어느 둘레길을 홀로 10시간을 걸을 때였다. 나는 이 검은 안식(black sabbath)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면서 홀로 걸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맛보았다.
그날, 멀리 오래 걷기에서 얻은 성과는 작지 않았다. 비록 아직 여물진 않았지만 검은 안식과 관련된 인식의 파편 일곱 개를 추출할 수 있었다. 즉, 걷기(공간, 시간 해체), 읽기, 대면, 믿음, 꿈, 종말 등이다. 이 실마리들에 의지해 나는 사유의 광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경계 없는 불확실성 속의 신뢰,’ ‘나의 무지의 자각,’‘자기와 세계 돌봄의 윤리,’ ‘공동체를 넘어 공동체성의 실천’, ‘자연과 세계 모든 곳에 스민 신의 숨결,’ 등을 다시 좀 더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 그 과정의 끝에서 나는 야훼의 창조신학를 다시 체감했다. 그의 통치 속에서 하나의 사상적 토대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나의 사유로 ‘철학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모아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검은 안식의 철학, 어두운 빛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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