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의 모든 것

『뉴턴의 아틀리에』김상욱 유지원,(민음사, 2020)

by 푸른킴
다양성과 소통의 정원, 작은 것들의 우주
양자와 점이 만나는 예술과 과학의 대화


과학인문미학의 등장

2025년 6월, 마침내 다시 새로운 세계다. 이 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작은 것들이 다양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소통하면 좋겠다. 다양성과 소통을 생각하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이 공동 저술한 『뉴턴의 아틀리에』를 다시 살펴본다. 이 책의 기저에는 물리, 수학, 미술, 음악, 폰트디자인 등, 평소에는 달라 보이는 여러 관점이 조화롭게 자리한다.


우리가 알듯이, 과학과 인문은 근접하기 어려운 경계가 있어 보인다. 아예 서로 다른 영역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다름을 역지사지의 태도로 살핀다. 상대의 영역을 관찰하고 소통하려 애쓴다. 서로서로 타 학문을 타산지석 삼아 인문과학의 미를 드러낸다. 서로의 경계까지 적극적으로 다가가 넘나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미학’의 궤도를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이 두 영역의 근원이 서로 잇대어있다는 것을 상호 친절한 태도로 인정한다. 물리학자는 미술의 세계에 담긴 과학의 의도를 읽어내고, 타이포그래퍼는 예술 작품에 스며있는 수학과 과학의 가치를 정치하게 톺아낸다. 요컨대 이 책이 그려내는 뉴턴의 아틀리에에서는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씨줄과 날줄로 직조된’(18쪽) 미학이 꽃핀다. 서로 경계를 열어주고, 넘어서는 ‘경계 넘기’로 학문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과학인문미학’이라 할만하다.


경계인으로서 새로운 시선의 총합

경계 넘기란 얼핏 서구적인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를 시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경계 넘기는 서양 고유의 사조만은 아니다. 조선 후기 한국 사회사상에서도 이런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틀과 형식을 해체하며, 사회적 인습을 혁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대표적 예 중 하나가 박지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1780)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박수밀은, 이 열하일기를 토대로 박지원의 세계관과 그의 정체성을 두 개의 열쇳말을 제안한다. 하나는 ‘경계인’이며, 다른 하나는 ‘보기’다[『연암, 경계에서 보다-연암 박지원의 현재성과 생태정신』 (여름의 서재, 2025), 5]. 여기서 ‘경계인’은 고유한 삶의 방식을 가진 존재로서, 한편으로는 편향된 사고를 지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생활세계에서 기존 세계 질서를 해체하듯 그 경계까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지식 탐구인이다.


한편, ‘보기’ 역시 경계 넘기, 특히 시선의 해체를 담지한다. 즉, 세계관의 확장과 관련 있다. 이를 통해 연암은 관습과 통념에 근거한 획일화된 시선을 경계한다. 중앙에서 변방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아예 눈을 뜨지 않고 감은 채로도 이 세계를 깊이 조망하려는 자세다. 이 시선은 ‘복안(複眼)’으로 ‘명심(冥心)’을 추구하도록 권면한다. 다시 말해, 중심에서 기꺼이 비켜나 변방의 시선으로 이 세계의 작은 것들을 깊이 관찰하는 심미적 태도다.


요컨대 ‘경계를 넘나드는 생각’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박수밀, 6쪽)라는 박지원의 태도는 곧 굳어버린 세계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창조’를 촉발하는 ‘창의적 사유’의 근원이 된다. 박수밀은 이런 연암의 사상을 “기존지식과 권위에 대한 비판, 현실과 사물의 직접 관찰, 하찮은 것 속에서 본질을 찾는 태도,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를 통해 “생각의 틀을 깨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박수밀, 7쪽)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연암의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세계관의 기초인 ‘경계인’과 '창조적' 보기‘가 현대적 개념으로 복원되었다면, 아마도 그 예가 『뉴턴의 아틀리에』일 것 같다.


다양성과 소통의 정원

이 책은 스물여섯 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두 사람이 한 편씩 일간지 인터넷판에 연재했다. 모두 쉰두 편이다. 이후 책으로 편집되면서 다섯 개의 주제로 묶였다: 관계, 관찰과 사색, 인간과 공동체, 수학적 사고, 물질세계와 창작 등이다. 문학평론가 故 이어령(1934~2022)은 생전에 이 책에 대해, ‘다른 분야의 공통된 창의성’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432쪽). 소설가 김초엽은 “서로 다른 작은 것들의 교차와 확장의 결들을” 찬탄했다. (433쪽)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의 장점은 과학과 예술 전문가들이 최대한 상대의 관점에 힘입어 ‘다양성과 소통’이라는 관점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는 제목은 물론이고 남녀 저자에 따라 글의 폰트를 다르게 적용한 것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앞글의 주제 요약문과 뒷글의 핵심 문장을 양면에 나란히 마주하도록 배열한 것도 그렇다. 이질적 분야이면서도 소통 효과는 극대화되도록 편집한 것이다. 요컨대, 책 자체가 ‘다른 것들의 조화’를 구현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유지원은 이를 ‘책의 정신’(16쪽:참조 17쪽 그림)이라는 말로 함축했다. 그가 말하는 ‘정신’을 유추해 보면, 물리학과 예술이라는 개별 영역이 경계를 넘어 조화하면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는 확신이 묻어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이 책의 논지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극과 극에 자리할 것 같은 이 두 세계는 오히려 선명하게 ‘중첩’된다. 세계 요소들은 동떨어져 있다 해도 합일된 총합의 세계를 동시에 견지한다. 그 총합을 이루는 것은 ‘작은 것’들이다.


사상적 근거:작은 것, 점들의 아름다움

서로 다른 작은 것들의 조화라는 논지에서 본다면, 이를 입증하는 저자들의 사상적 근거도 설득력 있다. 첫째, 작은 것들의 존재의의다. 물리학이 원자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듯이, 타이포그래피라는 글자 예술 역시 한 붓의 작은 획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책의 알짬이다. 다시 말해, 작은 것들이 자기 고유성을 잃지 않고 예술의 영역까지 확장한다는 세계관이다. 예를 들어 4부의 첫 주제로 제시된 ‘점’이 그 좋은 예이다. 처음에 점/원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힘이다. 다른 점들과 또 다른 원자와 어우러져 ‘모든 것’을 형성한다. 마침내 거대한 생명을 이어나간다(276, 283쪽). 과학의 ‘원자(atom)/쿼크(quark), 예술의 한 점(dot)은 독자적인 다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세계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작은 거인' 같은 공동 속성을 갖는다. 작지만 거대하게 역동하는 공동 기초인 것이다. 저자들은 강조한다. “점이 면이 되고 선들이 조화되어 글자 공동체를 이루고”(277쪽), “원자가 동사이듯 점도 동사이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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