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Dec 15. 2020

이젠 설레지 않아도 여전히 설레어서

청소를 하다가 떠오른 것들


    책장에 내려앉은 먼지가 신경 쓰이는 때야 말로 추억에 잠기기 딱 좋다. 쌓인 먼지를 탈탈 털고 남아있는 한 톨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마른걸레로 박박 닦을 때 마주치는 추억이 있다. 지난 사랑이 있다. 이렇게 쓰면 왠지 새벽 세 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굳이 "자니..?" 메시지를 보내고 사라진 숫자 1에 괴로워하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떠오르는가? 땡. 이젠 음악방송의 무대 위보다 뉴스의 사회면이 더 어울리는 옛 아이돌 오빠, 은발이라 먼지가 쌓인지도 모른 채 방치한 만화 캐릭터 피규어, 흑발인데도 먼지가 쌓였는지 모른 채 방치한 영화 캐릭터 피규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나 혼자 사랑이라 불렀던 그들의 존재가 훅, 다가오면 반갑다가도 더는 예전처럼 뛰지 않는 마음에 잠깐 어색해진다.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 선생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우리 새벽에는 조용히 자도록 해요. (출처: 동아일보*)


    책장 두 번째 줄 가운데 칸에는 차곡차곡 모아둔 음악 CD가 있다. 굳이 생각해내지 않는 이상 찾아볼 일 없는 가장 구석에는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아이돌 오빠들과 동생들의 앨범이 있다. 3개월 바짝 불태웠던 그 오빠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그 오빠들까지. (이렇게 쓰니 매우 위험한 사람을 만난 것 같지만 다 아이돌 맞음) 앨범을 다시 열어봤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말 그대로 내 삶의 '전부'였던, 누가 내 청소년 시절을 정의하라고 하면 단연 '아이돌'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벅차게 설명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를 정도로, 정말, 정말 좋아했다. 그랬는데 이젠 어디 가서 첫사랑이라 말하기도 창피하네. 잔뜩 꺼내 놓은 앨범을 닦고 다시 진열하며 곤도 선생님의 질문을 떠올려 봤다. 설레는가, 설레지 않는가. 당연히 안 설렌다. 


    그 밑 줄 왼쪽 칸에는 가장 좋아했던 일본 만화책과 캐릭터 피규어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호기롭게 다짐했다. "이젠 모든 종류의 덕질도 졸업이다." 물론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이 방증하듯 나는 다시 덕후로 돌아왔지만 일본 만화만큼은 왠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뭐랄까, 다 커서도 만화를 좋아하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스포츠 만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종이 남자에게나 미친 듯이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만화책을 펼치면 작게 그려진 작게 그려진 '최애'의 얼굴을 괜히 손으로 쓸어도 보고, 품에 안아 보기도 하고. 25분이 채 안 되는 에피소드 하나를 보기 위해 6일 하고 23시간 35분을 목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또 물어봤다. 설레는가, 설레지 않는가. 안 설레는 것 같다. 미안해,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 말이지. 


    바로 오른쪽 칸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블루레이, 캐릭터 피규어와 그 캐릭터의 모습을 본뜬 솜인형까지 잔뜩 있다. 청소하다 오랜만에 발견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일 정도로 가득가득 차있다. '최애'에게 빠진 순간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지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악당의 꼭두각시가 된 그가 자신의 소중한 옛 친구를 보고 기억이 떠올라 악당에게 "그가 누구냐"며 물어본 그 장면. 푸른 바다가 그렁그렁하게 담긴 그 눈빛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호흡을 고른 뒤 잠시 '앓아야' 했다. 10초 뒤로 가기를 몇 번 눌렀는지. 그 서글프지만 청순한 눈빛에 발목을 잡혀 그 캐릭터의 굿즈만 보면 또 미친 듯이 사기 시작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갈 때 종종 데리고 나갔던 솜인형은 때가 꽤 많이 탔다. 한 번 꼬옥 안아보니 어쩌지, 이 친구는 살짝 설레는데. 


글 분량을 줄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출처: 본인 스마트폰**)


    사실 질문은 소용없었다. 설레지 않는다고 버리기는커녕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돌려놓았다. 버리려니 어딘가 섭섭하고 또 찝찝한 기분. 책장 앞에 가만히 서서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나는 지나간 사랑에 다시 설레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그 기억에 여전히 설레는 게 아닐까. 내 앞에 잔뜩 쌓여있는 지난 사랑의 증거를 바라봤다. 집에 딱 한 대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를 지네 오빠들 보는 데 혼자 다 쓴다며 동생과 싸우던 날.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과 하드보드지를 자르고 형광 색지를 오려 플래카드를 만들던 날. 겁도 없이 추운 겨울 새벽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공개방송에 보러 가기도 했다. 태블릿 PC 속 그림으로만 보다가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작은 피규어로 만난 만화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서 계속 바라봤던 날.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재개봉 소식에 매주 아침 솜인형과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영화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던 때도 있었다. 내 지난날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으로 가득했다. 


    왜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나. 옛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그와 찍은 사진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 전 애인을 잊지 못해 사진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도 그 사진에 켜켜이 묻어 있는, 열렬히 사랑했던 시절과 결말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행복했던 추억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게 아닐까. 순간에 충실했던 그때의 추억을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겠어. 물론 사진을 버린다고 머릿속 기억까지 같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사람의 기억은 스마트폰 앱 속 사진처럼 터치 한 번으로 지울 수 있는 무엇은 아니니까. 청소를 하다 갑자기 추억 여행으로 궁상을 떠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추억을 버리면, 거쳐 온 지난 시간마저도 같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나 또한 만지면 느낄 수 있는, 이제는 설레지 않지만 여전히 설레게 하는 다양한 사랑의 증거를 버릴 수 없음을. 


'추억을 묻어버린 추억 방' 나의 미래일까요. (출처 tvN '신박한 정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것저것 변명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옛날 오빠들 앨범은 먼 훗날 케이팝을 기념할 박물관이 생기면 기증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요즘 쓰레기 문제도 심각한데, CD와 피규어는 재활용이 안 될 수도 있지. 일단 환경을 지키자고. 게다가 인형은 여전히 너무 귀여워. 이 슬픈 눈빛을 보고 버리면 괴담처럼 다시 돌아올 걸. 그렇게 청소를 끝냈다. 


    사랑의 증거는 앞으로도 더 쌓일 것이다. 무탈하게 산다는 전제 하에 내 앞에 남은 날은 많고,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존재는 더 많을 테니. 자본주의 속 사랑의 증거는 곧 돈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굿즈를 살 것이고 (잠깐 흐르는 눈물 좀 닦자), 내 열정의 유통기한은 짧아 마음이 식어 그 증거도 결국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깊게 좋아하며 얻은 행복과 추억 또한 함께 남을 것이다. 잊고 싶은 쓰레기 같은 기억이 될 순 있어도 결코 쓰레기처럼 언젠가 썩거나 사라져 없어지지 않을 그 순간들이. 그러다 또 책장에 쌓인 먼지가 거슬려 박박 닦다 보면 그 지나간 사랑을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우린 그때 다시 만나자. 더 큰 반가움과 설렘으로 다시 다가와 줘. 




사진 출처: 

* 동아일보, "남친과 전남친의 차이…“새벽 2시 그의 문자”", 동아일보, 2013.07.01

** 검색을 해도 원출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 시 사진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 https://m.anewsa.com/article_sub3.php?number=2207208


헤더: Pixabay




* 예스24 '나도 에세이스트' 13회 공모전에 참여했던 글을 공개합니다. (똑 떨어졌기 때문이죠) 참여를 위해 제 예스24 블로그에 (무슨 자신감으로) 잠시 공개글로 올려둔 적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고 돌아 덕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