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맛
맛을 보관하는 캡슐이 있었으면 좋겠다.
맛에도 계절이 있다.
겨울아침에 뭉근하게 끓고 있는 미역국은 잿빛 새벽을 견디게 하고, 중간중간 박힌 씨를 피해
한 입 베어문 여름의 수박은 혀끝에서 별빛처럼 터진다.
그러나 그 모든 맛은 혀에 스치자마자 흘러가 버린다. 남는 건 희미한 기억뿐.
만약 맛을 보관하는 캡슐이 있다면 어떨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명절마다 해 주신 김 위에 찹쌀풀을 발라 깨를 뿌려 말리고 큰 가마솥에 갓 튀겨주신 김부각. 감자부각
가끔 그 맛이 너무 그리워 유명하다고 소문난 부각들을 사 먹어봐도 원조의 그 맛만 더 생각나고 그때마다 나는 맛을 보관하는 기억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열어 먹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나눈 대화. 가마솥 안에서 재료들이 소란스럽게 튀겨지는 소리까지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생긴다.
맛을 붙잡아 두는 순간, 맛은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다.
강물의 물을 움켜쥐면 손 안에서 고이는 웅덩이가 되듯, 그 맛은 살아 있는 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맛의 캡슐’은 기억을 봉인하는 작은 관일까, 아니면 생을 되새김질하는 비밀스러운 문일까.
사라지는 맛을 사랑하는 일.
그것은 사라짐을 붙잡고 거스르는 고집스러운 일이 아니라 곧 살아있는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