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은 두 번 산다.
한 번은 세상 속에서, 또 한 번은 기록 속에서.
첫 번째 삶은 불완전하고 때론 불안정하다.
우리는 늘 서툴고, 자주 잊고, 미루며 산다.
날씨에 흔들리고, 타인의 말에 상처받으며,
시간 앞에서 자주 무너진다.
그러나 두 번째 삶, 기록 속의 삶은 조금 다르다.
글 속의 나는 더 단단하고, 덜 흔들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나간 하루를 붙잡아 다른 형태로 숨 쉬게 하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사건이 문장 속에서 다시 깨어나고, 오래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한때 흘려보낸 감정이 문장 속에서 다시 눈을 뜨면, 그것은 이미 상처가 아니라 이해가 된다.
문장 속에서 다시 태어나며, 말하지 못한 말을 비로소 꺼낸다.
기록은 사라짐을 붙잡고 감정을 복원해서 재탄생시킬 수도 있는 최고의 기술 같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지나간 나를 구원하는 일이고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의 틈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나는 잊히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하루의 표정을 다시 불러내고, 잊은 줄 알았던 마음을 조심스레
펜 위에 얹는 일.
그렇게 써 내려간 문장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기록은 언제나 늦게 도착하지만 그 늦음 속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종이 위의 시간은 닳지 않고, 문장 속의 나는 조금도 늙지 않는다.
내 얼굴과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세월에 닳고 세상이 나를 잊어 서운할 때가 있지만,
기록은 나를 기억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기록 속의 삶은 조용하지만 실제보다 더 깊은 진실이 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 미처 다 닿지 못한 사랑, 스스로도 몰랐던 결심들이 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나는 느낀다.
한 사람의 인생은 단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두 번 살아내는
사람 같다.
한 번은 세상 속에서, 또 한 번은 문장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