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최근 다시 여러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고 있는 ‘2024 제1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읽으면서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오는 여주와 남주가 있다.
나는 보통 이야기를 읽을 때 모든 상황을 나에게 편한 대로 상상하면서 머릿속에서 배우를 마련해 카메라를 틀어놓고 책을 읽어 대본을 넣는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다.
가상의 캐릭터와 장소를 만들어내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이는 나의 상상력을 높이는 것에도 도움이 되고 이야기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나만의 방식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유추하게 만들 때면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작가로서 전하고 싶은 이미지와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뭔가 나의 상상에 대한 몰입이 깨지는 기분은 든다(그냥 개인의 감상에 대한 개인적 견해일 뿐 절대 작품에 대한 비판이 아님).
이 글도 그러했다.
처음에 나는 여자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30대의 은퇴한 교사정도로 잡혀있어서 흔히 생각하는 젊은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뒤로 가서 조금 살집이 있으며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하나하나 디테일한 설정이 나올 때 조금씩 이미지가 바뀌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이미지를 대입해 글을 읽었다.
처음에 나는 남자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기운 없고 눈치 없는 단순한 남성으로 받아들여서 보통의 남자를 생각했으나 관리직에 있으며 맡은 바 일에 책임을 다하는 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또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넣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어떻게 보면 편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이미지는 수영반에서 만날 정도로 자기 관리가 기반이 되어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으나 그런 게 아니었다.
자연스레 아름다운 이미지를 상상했었다.
적당히 가꾸어진 몸매와 괜찮은 얼굴, 매사에 진지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로 보고 있었으나 이들 또한 현실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읽었던 이미지는 마치 드라마와 같았다.
이미지를 바꾸어 새로 다시 읽을 때에는 마치 다큐와 같았다.
헌데 오히려 글의 내용이 더욱더 잘 전달되었다.
이들의 모든 행동에 들어가는 아픔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잘 맞물렸고 그와 함께 충돌하는 문제들도 이해되었다.
색달랐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 자체는 처음에 읽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단순히 나의 상상에 불과한 이미지가 조금 바뀐 정도로 글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도 바뀔 수 있다니.
한편으론 부러움이 느껴진다.
나 또한 나의 상상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주고 싶은 만큼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고 나와 같은, 아니 최소한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어야 나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매번 느낀다. 난 정말 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욕심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