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혜주, 태희, 지영, 비류, 온조의 스무 살을 담아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2001년 다섯 친구들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때의 다섯 친구들과 지금의 우리가 동일 선상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불안정한 관계와 현실 속에서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20년 전의 당신들과 지금의 우리는 같은 면 위에서 유사한 궤도를 그리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를 부탁해>는 교복을 입은 다섯 친구들이 부둣가에서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인천의 여자 상업 고등학교를 다니며, 똑같은 교복을 입은 이들은 끈끈한 유대감과 우정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다. 하지만 졸업 이후 혜주, 태희, 지영, 비류, 온조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게 된다. 서로를 '언제나 함께', '평등하게' 이어주던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후 혜주는 서울의 증권회사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며 성공의 꿈을 키우고, 태희는 아빠가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나간다. 지영은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가난 속에서도 유학을 꿈꾼다. 화교인 엄마를 둔 쌍둥이 비류, 온조는 독립해 둘이 지내며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좌판에서 판다. 우정이 다섯 친구를 여전히 이어주고는 있지만 예전 같을 수는 없다. 이들의 교집합은 점점 옅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혜주와 지영이다. 둘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단짝이었다. 하지만 20살, 둘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서울의 증권사에 취업해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느끼는 혜주, 조부모님과 함께 무너져 가는 집에서 살고 있는 지영의 삶은 다섯 명 중 가장 먼 거리에 놓였다.
현실적인 혜주는 유학을 꿈꾸는 지영에게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라며 찬물을 끼얹는다. 혹독한 사회생활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는 쇼핑으로 푼다. 안경 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회사에 안경을 쓰고 출근한 날에는 다른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남자 상사에게는 외모 평가를 당한다.) 곧바로 라식 수술을 한다. 지영이 한 땀 한 땀 그린 텍스타일 포장지를 아무렇지 않게 찢어버리기도 한다.
지영은 그런 혜주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낀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입사 면접에서도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떨어진다. 지붕이 무너져 가는 집에서 터진 양말을 기워 신는다. 지영은 혜주에게 자신의 힘든 현재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다. ‘유학’을 갈 것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신형 휴대폰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집에서 직접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다.
혜주와 지영은 만날 때마다 부딪친다. 서로의 상황도, 고민도 너무나 다르다. 혜주의 롤모델인 여성 팀장은 여자 상업 고등학교 출신인 혜주를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평가하고, 그는 직장 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해 "날 바꿀 수 있는 데까지 바꿔볼 거야"라고 다짐한다. 반면 지영은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경제적 책임을 떠안고 있지만, 그 상황을 타개할 여력이 없는 암울한 상황이다. 혜주와 지영, 단둘이 만남을 가져보려 해도 엇갈린다.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든 봉합해보려는 건 태희다.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따뜻한 시선을 가진 그는 소원해진 친구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선뜻 문자와 전화를 건넨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줘야 우정이 유지되지, 이러다가 금방 우리 우정 금 간다구." 하지만 각기 다른 세계에 발을 걸치게 된 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도 예전과 같을 수 없다.
태희의 삶은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아빠의 찜질방 일을 돕고, 뇌성마비 시인의 시를 타자기로 치는 봉사활동도 한다. 하지만 태희 또한 친구들에게 온전히 이해받지는 못한다. 뇌성마비 시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태희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우연히 마주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는 태희를 괴짜 취급하며 거절한다. 태희는 늘 주변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소통의 매개가 되어 주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데는 없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 사이의 균열을 막을 방도는 모르겠고 (혜주는 지영과의 관계에 대해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현재가 중요하지.”라고 태희에게 말한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태희의 아빠는 태희에게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봉사"냐며 면박을 주고,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한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다. 뇌성마비 시인은 태희에게 화난 이후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일련의 경험 이후, 태희는 시인에게 메모를 남긴다. "누군가가 널 떠난다고 해서,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누군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지만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 그런 감정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꼈던 때가 스무 살 즈음이었다. 10대에서 20대로 진입하며, 처음으로 타지에서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시절 죽고 못살던 친구들과는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를 잇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서로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떠나게 되는 시점에 다다랐다. 아마 그때에 서로를 대하던 모습은 혜주와 지영의 감정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리고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지금, 이십 대 중반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만나는 중이다. 그럼에도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처럼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 더 커진 것. 태희가 시인에게 남긴 메모의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그렇기에 우리를 '우리'로 묶어주던 하나의 연이 점점 옅어지는 걸 느끼면서, 서로의 세상에 가닿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붙잡아본다.
또한 <고양이를 부탁해>는 다섯의 표류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주변적이고 비주류적인 존재다. 부모님의 이혼 후 혜주는 혼자 떨어져 살게 되고, 그토록 꿈꾸던 서울에서 살게 되지만 '저부가 가치 인간'이기에 겉돌 수밖에 없다. 태희는 답답한 집 속에 갇힌 기분이다. 지영은 부모님의 죽음 이후 조부모님과 살았지만, 집이 무너지는 사고로 이들마저 잃고 분류심사원에 들어가게 된다. 비류와 온조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조부모님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
경계선의 삶에 위치한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하지만 졸업 이후 미묘한 균열이 일어난다. 이는 다섯이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시기의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탈출을 꿈꾸고, 또 어딘가로 이동한다. 그렇다고 목적지가 분명한 것도 아니기에 더욱 불안하다.
혜주는 고향인 인천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렇기에 더욱 성공을 갈망하며 서울로 이사한다. 태희는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선원이 되어 바다에 나가고 싶지만, 배를 타고 싶다는 태희의 말에 돌아오는 답은 (그가 여성이기에) "유람선 아니야"다. 지영 또한 자신을 버겁게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유학을 가고 싶다.
친구들의 모습을 대변하듯, 영화에는 이동의 수단이 되는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버스, 지하철, 항구, 공항 등이 그 예다. 영화의 중간 즈음, 다섯 친구가 처음으로 서울에 모이는 장면이 있다. 함께 화려한 서울 이곳저곳을 구경하지만,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각자의 관심거리를 쫓아 제각각 흩어진다. 이는 다섯 명의 옅어지는 연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끝무렵, 혜주는 직장 상사의 잔심부름을 하는 도중에 잠깐의 일탈을 꿈꾸고, 밤에는 같은 고졸 출신의 여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 잔뜩 취해 비틀거린다. 태희는 가족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도려내고 집을 떠난다. 지영은 분류심사원에서 나와 태희와 함께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공항에서 어디론가 떠나려 하는 태희와 지영의 모습을 비춘다.
혜주, 태희, 지영, 비류, 온조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모습 위로 지금 우리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영화 속 다섯 친구들과 지금의 우리를 일직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공통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속에서 '우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타지에서 여성으로 이십 대를 보내고 있기에. 또 이곳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우리'의 구성원들 또한 대부분이 타지에서 온 여성들이기에, <고양이를 부탁해>에 유독 마음이 간다. 차마 언어화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엿본 기분이다. 인생의 어느 한 면에서 유사한 궤도를 부유하는 이들의 감정을 이토록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할까.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불명확함과 불안정함 속에서 내일의 '우리'는 또 어디론가 떠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로 활동하며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