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게임에 다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사유는 콘솔 게임. 이를 충돌질 했던 가장 큰 요인은 <젤다의 전설>이다. "그래서 초록 옷 입은~" 정도의 밈으로만 알고 있던 게임을 잡게 된 건 정말 우연하고도 사소한 사심에 의해서였다. 유튜브 자동재생에 의해 습관적으로 틀어놓았던 ASMR 음악이 끝내주게 평화로웠고, 영상 안에 담긴 인게임 풍경이 유난히 푸르고 반짝거렸다. 타이틀을 확인해보니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명성이 자자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을 벅차게 만들 줄은!
조금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와 모험에 대한 (주로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델토라 왕국', '나니아 연대기' 등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뒷산을 오르내리던 사소한 기억들이 튀어 올랐달까. (실제로 '젤다의 전설'의 창시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그의 어린 시절 모험 경험이 게임의 토대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When I was a child, I went hiking and found a lake. It was quite a surprise for me to stumble upon it. When I traveled around the country without a map, trying to find my way, stumbling on amazing things as I went, I realized how it felt to go on an adventure like this.”)
그러니까. 꼬깃한 색종이에 사인펜으로 슥슥 그려낸 우리만의 모험 지도, 산길에 무심히 툭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 어린 눈에 예뻐 보여 주머니에 챙겨 넣었던 유리돌, 유난히 수상해 보였던 으슥한 장소 앞에서 치기와 허세를 토해낸 순간들, 우리의 모험에 가끔 동참했던 조그마한 친구네 강아지의 챱챱거리는 걸음소리. 이런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였다.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우연히 접한 영상은 사소한 사심(감히 짝사랑이라고 말해본다.)을 솟구치게 했고, 그렇게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이 지났다. 뭐든 쉽게 질리는 경향이 강한 나답지 않게 플레이 200시간을 훌쩍 넘긴 지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용사는 아직도 게임 내 세상을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상 '하이랄'에서 새로이 눈을 뜬다. 주인공 '링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100년 만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때 이 세계에 대한 기억은 소실된 상태다. 눈을 뜬 공간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초원이 펼쳐진다. 첫눈에 반했던 그 풍경이다. 지금 내딛는 발걸음 앞에 어떤 모험의 순간들이 기다릴지. 설레고 또 조금은 무서운 기분. 지나가다 마주친 노인이 아니었다면, 나(링크)는 이곳에서 뜻밖의 새로운 생을 기대하고 축복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용사다.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이. (물론 이 시점에서 링크는 자신이 용사라는 걸 모르는 상태다.) 지나가던 노인은 이 세상에 대한 간략한 정보-짜잔, 환영합니다! 왕국이 재앙 가논에 의해 망한 지 100주년입니다.-를 던져주고, 아이템 하나를 빌미로 개고생을 시킨다. 겁 없는 뉴비는 '그깟 아이템, 없으면 어때! 난 맨손으로 등반도 한다.'라는 마인드로 탑 위에서 설치다가 구명줄 없는 공중부양을 간접 체험한 뒤, 마음을 겸허히 고쳐 먹었다. 몇 번 휘두르면 폭삭 삭는 나뭇가지를 생명줄인 마냥 간절히 붙잡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나름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포장하고 싶지만 사실대로 고하자면) 눈물 나는 빤스런의 연속을 통해 조금은 듬직해진 나! 알고 보니 100년 전 전설의 용사?라는 식의 전개다. (게다가 나를 개고생 시킨 노인네는 무려 100년 전 이 왕국의 왕이었다고 한다. 참 나!) 불쾌함을 폴폴 풍기는 머나먼 저 하이랄 성이 무너지지 않은 건 100년 전의 젤다 공주님 덕분이고, 그 대단한 공주님이 재앙 가논을 간신히 억누르며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데. 솔직히 내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링크(플레이어)를 도와주기 위해 게임은 다소 독특한 방식을 채택한다. 바로 '과거의 기억들'이다. 하지만 이 기억 찾기 프로젝트. 만만치 않다. 추억이 존재하는 장소의 사진, 지도, 화가 칸기스의 다소 불친절한 설명이 전부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지점은 이 '기억 찾기'에는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을 찾겠다'라는 의지 아래 움직여도 길을 잃기 일쑤였는데, 새로운 세상에는 그만큼 낯선 것들이 불쑥 출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목표와 의지에 강제성이 없으니 나를 손짓해 부르는 실마리들을 향해 자유분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기에 기억 찾기 프로젝트에는 필연적으로 하이랄 곳곳을 누비며 발품을 파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앞서 "내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 조금은 어리둥절하다."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연스레 해소된다. 플레이어는 세상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상호작용하고 나름의 생존법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탐색 중에 하나씩 되찾는 '기억'들을 통해 링크는 자신이 싸워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나간다. 물론 '나의 링크'는 기억을 복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게임 진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링크를 추동하고, 일련의 움직임들은 기억을 발견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무궁무진한 세상을 샅샅이 누비는 것과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영웅의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 덕에 링크와 플레이어는 동등한 위치에서, 연결되고 또 연결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억 찾기에는 강제성이 없고, 기억을 찾으러 다닌다 해도 그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즉 비선형적인 플래쉬백의 형식으로, 선택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맥락 없이 띄엄띄엄 토막 난 기억은 혼란스럽다. 어떤 플레이어는 이러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주인공 링크에게 보다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기제였다. 기억상실 설정은 게임 안 링크와 게임 밖 플레이어가 하이랄이라는 장소에서 얻는 정보값이 일치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게임 밖의 플레이어가 링크의 100년 전 기억을 보는 것과, 게임 안의 링크가 자신의 100년 전 기억을 마주하는 감정은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링크와 전생의 기억 속 링크의 단절이 플레이어와 현재의 링크의 간극을 좁혀준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용사는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를 통해 서사를 획득해 나간다. 낯선 세상에서 눈을 뜬 이방인으로서의 생존본능에 불과했던 링크의 동기가 세상을 탐색하면서 변화한다. 자신의 전생을 조금씩 복구하면서, 이 세상이 지닌 쓸쓸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실패한 세상이다. 100년 전의 나는 좌절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은 죽었다. 무성하게 자란 푸른빛 이면에는 폐허가 된 옛터들만이 존재한다. 그 옛날 번성했을 장소에는 이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실패의 징후로 가득하고, 나 혼자만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우울한 생각. 그런 생각이 용사를 옥죈다.
분명 첫 시작은 이렇지 않았다. 새로이 눈을 뜬 세상의 틈에는 온통 보물이 가득했고, 설렘이 넘실거렸다. 드넓은 초록의 공간은 경이와 찬탄을 일으켰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기억을 찾아가며 그 틈새를 단단히 채워갈수록 외로움이 움텄다. 부지불식간에 만개한 이 외로움은, 이 세상을 전부 다 알아가면 잦아들 감정일까?
외로움의 시기는 오래도록 이어졌고, 짙어졌다. 이러한 마음은 용사에게 소소한 욕심을 불어넣었다. 마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길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말을 거는 빈도가 늘었다. 괜히 말을 쓰다듬어 보고, 마구간의 개 앞에 쪼그려 앉아 고기를 잔뜩 건네본다. 괜히 더 좋은 침대에서 잠들기를 청해 본다. 집 한편에 장식된 동료들과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가면을 쓰고 복작복작 모여있는 몬스터들 틈에 섞여본다. 버섯을 따다가 매번 몬스터 무리에게 위협당하는 철없는 자매를 몇 번이고 구한다. 용사가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부탁도 기꺼이 돕는다.
여기에는 유독 기억에 남는 부탁들이 있다. 한 마을에는 경비병 두런과 그의 어린 두 딸 코코나, 푸리코가 산다. 두 자매의 엄마는 일찍이 돌아가셨다. 언니인 코코나는 아침마다 마을 돌무덤가에서 엄마를 부르며 훌쩍인다. 다가가 말을 걸면 (누가 봐도 울었는데) 자신은 울지 않았다며 "어머니 몫까지 잘 해내야 하는 걸요. 어머니는 아마.. 여기 잠들어 계세요. 분명 천국에 계실 거예요.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시지만.. 코코나는 알아요.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라고 말한다. 낮에는 식재료 가게 옆 조리대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코코나는 돌아가신 엄마의 요리 맛을 재현하기 위해 레시피 속 재료를 찾아와 주길 부탁한다. 부탁을 들어주면 코코나는 그리운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외친다. "코코나 있죠, 결심했어요! 커서 요리사가 되기로요! 요리사가 되어서 모두를 행복하게 할 요리를 만들 거예요!"
또 다른 마을에는 어린 무기 마니아가 있다. 소년 네브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토록 꿈꿨지만, 살아생전 보지 못한 세상의 온갖 무기들을 보고 싶어 한다. "내가 무기를 보고 천국에 있는 할아버지한테 말해 줄래!"라고 선언하며 말이다. 또, 사막 어딘가에 위치한 마을에는 최근에 결혼했지만, 갑자기 남편이 희귀한 병을 앓게 된 멜레나가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괴물의 간이 필요한데, 마을 병사들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해보지만 여타 사정으로 손을 내미는 이는 없다. 그는 "생판 남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해.."라고 말하며 체념하지만, 외로운 용사는 기꺼이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용사의 다정함은 '추낙 지방의 시자기 마을 건설'과 '리토족 음유시인 카시와'와 관련되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마을에서 볼슨 건설을 만나게 되고, 직원 허드슨은 새로운 마을 건설을 위해 추낙 지방으로 떠난다. 용사가 허드슨의 마을 개척을 돕게 되면 이를 위해 집을 지을 장작을 구해오고, 마을을 함께 발전시켜 나갈 이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마을은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간다.
추낙 지방이 하이랄 끝자락에 있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묘사되는 만큼, 이런 곳에 새로운 마을이 탄생한다는 점이 미묘한 기대감과 설렘을 꽃피웠다. 또 마을 건설이 유독 뜻깊었던 건, 시자기 마을이 하이랄에 잔존하는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마을에 한 명, 한 명 더해지면서 완성되는 BGM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결혼 이벤트(결혼식에 참석한다고 옷까지 차려입은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가 발생하게 되는데, 결혼이 서로 다른 이가 '함께', '새로이',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시자기 마을'이 가진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도 이러한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로는 '처음부터(一から)', 영어의 경우 'Tarry(기다리다)', 한국어의 경우 '시작'을 뜻한다.
'리토족 음유시인 카시와'의 경우, 하이랄 곳곳을 돌아다니며 챌린지에 대한 다양한 힌트를 주는 인물이다. 돌아가신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발견한 고대의 노래를 모두 현세의 용사에게 전해주는 것이 사명이었다. 관련해서 120개의 사당 챌린지와 1개의 미니 챌린지를 끝내면 카시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카시와의 고향 마을을 방문해 하밀라에게 말을 걸면 "링크씨,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그이가.. 남편이 돌아왔어요! 남편은 항상 딸아이들이 노래를 연습하는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요.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테니 만나러 가 주세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머잖아 사랑스러운 다섯 꼬맹이들과 카시와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이 이뤄지려면, 앞서 말한 챌린지의 완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자유도가 높은 오픈월드 게임답게) 강제되지 않는 사항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최대한 빨리 세상을 구하겠어. 서둘러 재앙 가논을 물리쳐야지!'라는 성급한 마음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여기서 용사는 이 '망한 세상'에 대해. 또 '세상을 구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용사는 말이다.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용사로서의 사명보다는 모험심이 앞섰다. 그러나 조금씩 기억을 되찾아가면서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충분히 강해졌음을 스스로 느꼈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저 하이랄 성 최상층으로 달려가 끝을 보아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찾아온 이상한 감정에, 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싶어 욕심을 부렸다. 그 용사는 엔딩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용사는 닥치는 대로 다정을 베풀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도록 손 쓰는 것. 보이지 않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그 행방을 알려 주는 것. 나름의 방식으로 어린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것.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대신 척박한 땅을 밟고 증거를 찾는 것. 시간을 내어 노인의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것. 누군가의 꿈, 평생의 소원을 지지하고 돕는 것.
이 모든 게 용사가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뒤따라오는 보상도 보잘것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은 주고받음에는 묘한 간지러움이 서려 있었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마 그 모든 일들을 통해 느꼈던 간지러움은, 삶을 복구하려는 시도가 품어낸 희망의 감촉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엉망이 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이 따끔따끔 새로이 피어나고 있고, 그렇기에 다정한 온기가 필요하다고. 이게 세상을 구하는 방식이라고. 이제 용사는 세상이 지닌 쓸쓸함보다는 그 안에서 피어난 희망을 눈에 담아본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삶이 시작되고 있다. 전생의 동료들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의지는 아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찬란한 푸른빛이 폐허의 황량함을 뚫고 새어 나왔고, 그 위에 새로운 이들이 터를 잡았다. 세상에 희망의 징후들이 찾아들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새로이 찾아왔다.
외로움은 이 세상을 '새로이' 알아가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이유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용사는 이제 엔딩을 볼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로 활동하며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