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29. 2023

선비도 화를 낸단다.

건우는 별명이 선비입니다. 순하디 순합니다.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한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 자존감을 키워주려고 매일 하는 매일 10개씩 나 칭찬하기 활동에서 건우는 매번 말합니다. 

"지각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에 집중한다.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린다."

바른 태도와 집중하는 모습 덕분에 선생님들이 건우가 특수학급 소속임을 모를때도 많습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20번 책 읽으라고 시켰어요. 그래서 크게 읽었어요."

건우가 쉬는 시간에 와서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 그랬어. 건우 많이 떨렸어?"

건우는 아주 많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청 떨렸어. 그런데 용기를 냈어."

제 마음을 알아주는 내가 고마웠는지 갑자기 반말까지 섞어가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평소에 가르쳐준 대로 용기를 내서 크게 책을 읽었다니 대견합니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역시 건우야.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고 잘하는것과 못하는게 있어. 다 잘할수는 없지. 건우 잘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너무 떨렸지. 그래도 용기내서 건우 정말 잘했어."

그렇게 순한 건우였기에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트러블이라기보다는 건우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많았지요. 

"야. 박건우. 이리 줘."

건우가 가지고 있던 연필을 은채가 얼른 빼았습니다. 건우는 눈만 꿈뻑 거리며 그걸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건우야. 너 은채가 네 연필 가져간 거 어때?"

"기분 나빠"

건우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나를 바라봅니다. 

"건우야.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지. 싫어 해봐."

건우는 아주 작은 소리가 평온하게 싫다고 말합니다. 

"건우야 그렇게 말하면 은채가 돌려주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에 힘을 줘.

크게 소리질러 싫어 돌려줘라고."

건우는 내가 한말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싫어. 돌려줘."

하지만 선비라는 별명답게 하나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나는 은채와 건우를 자리에 앉히고 동물 인형을 꺼냈습니다. 

"토끼야. 연필 줘. 너 연필 필요없잖아."

다람쥐가 윽박지르며 토끼의 연필을 빼았습니다. 토끼는 작은 소리로 대답합니다.

"이리 줘. 나 연필 필요해."

하지만 다람쥐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민우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건우야. 토끼를 도와 줘."

건우가 배운대로 소리를 지릅니다. 

"토끼에게 돌려줘."

하지만 다람쥐가 꿈쩍도 안합니다. 조금더 큰 소리로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건우는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쓴채 소리에 힘을 더합니다. 아직도 많이 무섭지는 않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은채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다람쥐 마음이 어떨까."

은채는 다람쥐가 기분이 나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 친구 허락없이 물건을 가져가면 기분이 나쁜 거야. 그렇지. 은채야."

은채는 자신이 직접 혼나는 것보다 인형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은채야. 다람쥐랑 토끼처럼 은채랑 건우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럼 건우 마음이 어땠을까. 건우에게 물어보자."

"기분 나빴어. 돌려줘."

건우가 말했습니다. 

"은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돌려줄께요. 미안해."

그제서야 잔뜩 찌푸러졌던 건우의 얼굴이 편안한 선비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을 직접 혼내기 보다 이야기나 인형을 통해서 설명하면 혼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도 나쁘지 않고 행동도 더잘 바뀝니다. 가끔 교실에서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입장바꿔 생각하기를 어려워하는 지적장애 친구들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명해주면 더 쉽게 이해합니다. 인형들의 목소리를 바꿔가며 연기까지 해주면 재미있어 집중도 잘하지요. 그렇게 은채와 건우는 연필 싸움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건우야 잘했어. 네 속상한 마음을 말해도 괜찮아. 네 마음을 표현하고 그걸 알아주는게 친구야."

하지마라는 그 한마디 말을 못해서 반에서 친구들이 시키는 나쁜 행동을 따라했던 건우.

나는 이번 기회에 건우에게 꼭 '하지마'라는 말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선비같은 건우에게는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건우를 보며 묻습니다. 

"건우야 어떻게 해야해?"

"하지마. 싫어."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건우가 말합니다. 아직 하나도 무섭지 않은 말투와 덜 찡그린 얼굴이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건우가 대견합니다. 

"그래. 잘했어.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

건우는 내가 제편이 된 것같아 기분이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건우야. 난 늘 네 편이야. 하지만 내가 없을 때도 네 마음을 표현할 줄 알아야지. 선생님이 응원할테니 용기를 내렴.'

오늘도 교실에 올라가 건우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할까요. 용기 낼 때마다 건우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인형극에서 함께 외치던 내 목소리라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건우야 괜찮아. 용기를 내."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나대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