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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30. 2023

네가 춥지 않았으면 해.

갑자기 교실로 들어서며 혁이가 휴지를 찾습니다. 

"교실에서 친구가 물을 쏟았어요. 휴지로 닦아야 해요."

휴지 한칸을 챙겨 교실을 나서는 혁이에게 휴지 한통을 챙겨주었습니다. 

혁이는 조금있다가 우리 교실로 내려왔는데 손에는 물에 흠뻑 젖은 휴지가 들려있었습니다. 

혁이의 패딩 또한 흠뻑 젖어있었지요. 

"오늘 추운데 이렇게 옷이 젖어서 어째."

교실에 있는 헤어드라이로 말리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기계가 작동을 안합니다. 

곧 점심시간 외투도 없이 식당에 보낼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내 패딩을 대봤지만 키가 큰 혁이에게는 턱없이 작았습니다. 

"혁아. 일단 물은 많이 닦아내었으니 이걸 입고 식당에 가. 밥 먹고 바로 교실 가. 

외투는 벗어서 교실에 걸어둬. 추우니까. 알겠지?"

몇번이나 다짐해서 혁이를 식당으로 보냈습니다. 걱정이 되어 조금있다 식당에 가서 

한번 더 일러두었습니다. 혹시 몰라 5교시 시작 전 혁이 교실에 가보았지요. 

혁이는 내가 말한대로 외투를 벗어두고 체육복만 입고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아직 패딩이 다 마르지 않아 입을수는 없을 것 같았지요. 

그렇게 한시간을 지내고 다시 혁이 교실에 가보았습니다. 

다행히 패딩은 거의 마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혁이네반 친구들이 외투를 챙겨입고 

모두 교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무슨 시간이야?'

"스포츠요."

스포츠면 운동장에서 할게 분명했습니다. 추운 날씨지만 눈발이 하나 둘 날렸습니다. 

눈 구경하자며 아이들은 운동장을 고집할 텐데요. 혁이의 마르지 않은 패딩이 끝내 걱정이 되었지요. 

6교시 시작후 운동장을 보니 혁이네 반 친구들이 나가있었습니다. 

혁이는 친구들이 축구하는 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끼어주는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만 하는 수업시간보다는 

자유로워보였습니다. 

'혁이가 춥지 않을까. 우리 교실에 들어와있으라고 해야하나.'

특별히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스포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혁이를 데려올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인지교과 수업보다 자유로운 수업이고 패딩도 거의 말랐잖아. 괜찮을 거야. 이 시간 아니면 언제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어울려 보겠어.'

나는 괜한 걱정에 혁이를 데려오는 일을 그만 두자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활동하고 자유롭게 말하는 데 스포츠 시간만큼 좋은 시간도 없으니까요. 내가 데리고 있으면 추위는 피하고 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혁이에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통합교육이라는 것이 그래요. 딱히 표가 나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는 거니까요. 그걸 지켜보는 나는 안절부절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이 배워나가는게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믿고 기다려줘야지요. 

혁이 생각은 잊고 한참 내자리에 앉아 일 처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창밖을 보았는데요. 창밖에 혁이가 가만히 와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혁아 심심해?추워?"

"네."

"그럼 이리 들어와."

혁이는 내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벌떡 뛰며 교실로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한두마디 나누고 놀았지만 계속 축구공만 따라다니기는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교실로 들어선 혁이의 패딩은 이미 다 말라있었습니다. 다만 친구들을 따라 다니느라 온통 흙이 묻어있었지요. 

"혁아 추웠어?"

"네. 추웠어요."

혁이의 손이 아주 차가웠습니다. 

"여기 편하게 있어.몸이 금방 따뜻해질 거야."

학부모님들께 늘 말합니다. 내가 이 학교에선 아이들의 엄마라구요. 그러니 염려 마시라구요. 

진짜 엄마라도 된 듯 혁이의 패딩이 젖은 것도, 친구들과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주위만 빙빙 도는 것도 모두 마음이 쓰였습니다. 

"혁아. 친구들이랑 무슨 얘기했어? 지난번에 우리 수업시간에 배웠잖아. 친구들이랑 할수 있는 얘기들. 기억나?"

혁이는 '안녕'이라고 인사만 했답니다. 

"그다음엔 오늘 춥다 아니면 눈 온다. 하지 그랬어."

혁이는 배우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어려워했습니다. "춥다"라고 말은 건넬수 있지만 그 다음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지는 어려워했지요. 

'네가 차라리 너네 반 친구면 너랑 친구들이랑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게 도와줄텐데.'

특수교사 초기부터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교사로서 친구 관계에 끼어들기는 참 어렵습니다. 특히 자기들만의 세계관이 또렷해지는 중학교부터는 더 그렇지요. 이 친구랑 놀아라 해서 노는게 아니니까요. 잠깐 볼일이 있어 혁이네교실에 내가 들어가면 아이들이 홍해처럼 갈라집니다. 교사라는 존재 자체가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 못내 불편한 것이지요. 차아리 내가 학생이었다면 교복을 입고 혁이랑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줬을텐데 싶어 아쉬울 때가 많지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이는 이제 따뜻한 우리 교실에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래. 네가 편안하니 되었다. 한발 한발 천천히 가도 돼. 괜찮아.'

 수업 끝종이 울리고 혁이는 부리나케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종례를 받아야 얼른 집에 갈수 있으니까요. 혁이는 교실로 돌아갔지만 창문밖에 서서 하염없이 우리 교실을 바라보고 있던 혁이의 모습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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