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축제 담당 선생님이 다가오셨습니다.
"선생님 찌니어스 공연자 대기실로 이동해 주세요."
나는 부리나케 하진이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가발로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하고 귀여운 노란 병아리 빛 점프슈트를 입은 하진이가 우리반에서 대기하다 강당으로 들어섰습니다. 하진이가 함께 댄스동아리를 하고 있는 언니와 오빠도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하진아. 어때? 무대 올라가려니 떨려?"
"설레요."
하진이는 떨린다는 말대신 설렌다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 댄스동아리를 만들어서 무대에 올랐을때는 무던히도 떨었다는 하진이. 이제는 제법 무대 경험도 쌓였으니 설레이나봅니다. 게다가 이곳은 하진이에게 너무나 익숙한 학교, 친구들도 익숙하니 설렌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설렌다던 하진이는 아침부터 사라져서 나를 애태웠지요. 너무 설렌? 나머지 아침부터 강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오전엔 교실에서 체험을 해야하는데 하진이가 사라져 1층부터 5층을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르는데요. 하진이는 아침부터 강당에 가있었답니다. 1학년 행사시간인데도 아무리 교실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서요. 너무 떨려서 아침부터 무대를 보고 싶었는가봅니다. 그렇게 여러번 마음의 준비를 마친 하진이는 드디어 무대에 올랐습니다.
알라딘 ost에 맞춰 살랑 살랑 춤을 추는 하진이는 정말 멋졌습니다. 평소의 끼가 많은 하진이의 춤사위를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습니다. 하진이는 열심히 춤을 추었고 친구들은 힘껏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하진이 잘했어. 박하진 잘했어."
진행을 해주신 선생님이 몇번이나 하진이 이름을 부르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욕을 하기도 하고 말썽을 부리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무대의 주인공인 하진이를 위해 친구들은 화이팅을 외쳐주었지요. 하진이의 이 역사적인 공연을 남기고자 동영상을 찍던 나는 왠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습니다. 무대에서 열심히 춤을 추는 모습이 예뻐선지. 친구들의 응원을 실컷 받는 하진이가 안쓰럽고 대견해선지, 이렇게 장애인도 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하진이가 자랑스러워선지 이유는 몰랐습니다. 눈물이 쏟아져서 누가 볼새라 얼른 닦았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하진이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하진아 정말 잘했어."
말하는 내내 표시는 안하려고 했지만 눈물 범벅이 된 나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하진이 어머니와 만났는데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습니다. 나도 마음이 이럴진대 어머니 마음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누가 볼것같아 다 닦아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무대인데. 내가 왜 울어. 우는게 웃긴거지.'
얼른 마음을 추스리고 나와 하진이를 한번더 칭찬해주었습니다.
조금있다가 우리반 어머니들 단체 톡방에 하진이 공연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늘 있었던 공연을 보내신 겁니다. 나 역시 내가 찍은 동영상을 공유했습니다.
"하진이 정말 잘했어요. 하진이 무대 올라간 모습보니 울컥합니다."
기현이 어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을까요. 조금씩 빛깔은 다르지만 마음이 비슷했나 싶었습니다.
"무대 끝나고 선생님이 울컥 하시는거 보고 저희도 마음이.. 암튼 선생님에게 한번 더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진이 어머니가 답톡을 보내셨습니다.
"우는게 웃긴 거지요. 당연한 건데.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데.
그게 잘 안되서 속상했던건지 주책맞게 눈물이. 암튼 우리 하진이 오늘 진짜 멋졌어요."
처음 하진이의 찬조출연을 제안했을때가 생각났습니다.
"부장님 저희반 아이가 댄스동아리를 하고 있는데 팀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도 될란지요. 찬조 출연으로요. "
동영상을 한번 보내보라던 부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올라야 할 공연이네요. 무조건 올릴께요. 다른 학교 학생이 있어서 무대리허설은 못하겠지요. 그에 관련된 준비는 선생님만 믿을게요. 준비해 주세요."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 어쩌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을 보여주도록 빈틈없이 준비하는것, 그래서 아이들이 세상과 더 잘 어울릴수 있도록 돕는 것 말이지요.
매년 축제날이 되면 괜히 우울했습니다. 1학년때 보던 친구가 3학년이 되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자라있었거든요. 선생님들도 모두 놀랠 만큼 아이였던 친구가 많은 성장을 한것이 눈에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반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키워냈지만 그게 눈에 띄일 정도로 보이진 않았어요. 성장세가 하루가 달라 보이는 친구들과 달리 1학년때도 3학년이 되도 별반 차이가 없던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에 만족하던 나도 약간 힘이 풀리긴 했었는데요. 올해는 하진이 덕분에 벅찬 축제가 되었습니다.
'하진아 정말 잘했어.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해맑게 웃으며 무슨일이 있었나 싶어하는 하진이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가장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하진이를 보며 함께 박수치고 자랑스러워 하는 덕분이었을까요. 하진이의 키가 오늘은 왠지 한뼘 더 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