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에 꽂히면 또 한참 그것에 매진한다. 봉사가 한 때 유행처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갑자기 누워있다가 봉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자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던 지인을
불러 함께 구청에 가서 등록하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뭔가를 시작하면 또 알 수 없는 기이한 에너지가 뿜뿜인 데다 내가 꽂힌 일에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때였다. 그것은 진심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지원한 분야의 봉사단체의 장이 갑자기 몇 년간 훌륭하게 봉사활동을 잘해오다 그만두게 된
상황이었다.
사실 무언가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기존의 회원을 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마음 맞춰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월하게 그 작업이 이루어졌고 생면부지인 전임 회장의 지목으로 얼떨결에 나는 그 모임의 회장을
맡았다
또 뭘 맡으면 열심히 하든지 초반에 에너지를 엄청 몰아서 일을 하는 편이어서
당시 아동재활병원에서 뇌병변 아동들의 책 읽기 봉사를 하는데 병원에 의뢰해서
뇌병변에 관한 대략적인 이해와 책 읽기가 뇌병변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등에 대해 교육을 요구했다.
내가 꼬드겨 봉사를 하게 된 사람이나 새로 가입한 회원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기존의 회원들 중에 반신반의하며 뭔가 불만을 품은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중반쯤 되니 정리될 회원은 스스로 정리가 되고 제법 봉사팀이 잘 돌아갔다.
그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여유가 있거나 여력이 넘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좁은 소견에 '저분이 봉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싶은 분이 봉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특이한 성향의 선생님이 어디에도 적응 못하다 우리 팀에 왔는데 그분 때문에 나가신 분들도 좀 있었다.
회사도 아니고 그분더러 나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더구나 그분이 내가 그렇게 좋다니 어쩔 수 없이 계속 함께 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장점을 알았다. 험하고 궂은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하고 창의적으로 잘하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해에 감사장을 받았다. 나는 욕심껏 일하지는 않지만
조직원들이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었다. 그 즐거움은 보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의 바탕은 봉사를 서비스로 본다면 서비스받는 사람이 만족하고 감동할 정도로 해야 하는 거지,
내가 하는 봉사로 자기만족에 빠지는 그런 우를 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뇌병변 아동들의 부모들은 당시만 해도 치료를 받기 위해 오래 기다려서 병원에 예약이 되면 심지어 멀리 지방에서 올라와 방을 잡고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하루종일 대기실에서 잠깐의 치료를 받기 위해 그곳에 살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그 어머니들의 팔을 대신해 잠깐이라도 안아주고 품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파동으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봉사라고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줬다. 물론 나름 창의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엄마들은 좋아했다.
3년 여를 하다가 선생님들도 하나 둘 자신의 직업을 찾아가고 나도 다른 구청과 다시 연계되며 멘토링을 하게 되는 바람에 다음 후임 회장에게 넘겨주고 떠났다. 하지만 그 팀들과 오래도록 함께 만나고 모임을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이렇게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있어 살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는 조금 모자란 것 같고 별 볼일 없는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남을 자신의 성공의 목적이나 사다리쯤으로 디디고 지나가고 그 과정이나 결과를 함께 누릴 줄 모르는 사람들과는 이제 별로 함께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