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글쓰기는 분명히 닮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훗날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는 서른 살이 막 지났을 때부터 매일 10km씩 달리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만약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써 왔던 것과는 다른 걸 썼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책상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줄곧 글을 쓰는 것이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글 쓰는 것은 강인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나 역시 글을 쓰며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다. 만보 걷기, 요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며 근육을 늘리는 데 애쓰고 있다. 몸의 근육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도처에 널려있다.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떤가. 글을 오래 잘 쓰려면 글쓰기 근육이 필요하다.
트레이너에게 운동 PT를 받으면 혼자 유튜브를 보면서 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운동을 배울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PT를 받으면 혼자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글쓰기 실용서인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라는 책이다. 이번 달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3년간 방송작가로 일하며 글을 쓰고,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글쓰기 코치'인 김선영 작가가 썼다. 방송작가 출신의 글쓰기 코치가 쓴 책이라니,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믿음이 갔다.
책은 총 21일 동안 글쓰기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은 바로 인바디를 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디를 집중적으로 운동하고 싶은지를 정한다.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 PT 책답게 1장에서는 글쓰기 나이를 측정하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글쓰기 근육을 만들 준비를 한다.
2장에서 저자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끔 나만의 '작업실'을 꾸미라고 말한다.
글 쓰고 싶은 작업환경을 만들려면?
1.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확보하라.
2. 글 쓰는 환경에서는 오직 글만 써라.
3. 손가락을 춤추게 하는 글쓰기 전용 BGM을 찾아라.
2장을 읽고 언제든지 집에서 글을 쓸 수 있게 '작업실'을 꾸미고 이름을 붙여봤다. 내 작업실 이름은 '글 곳간'이다. 저자는 어떤 일에 몰입하고 싶다면 한 공간에서는 한 가지 일만 하라고 강조한다. 침실에서는 잠만 자고, 작업실에서는 글만 쓰라는 것이다. 자꾸만 책상 앞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들게 책상 한편에 꽃도 가져다 놨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만의 글쓰기 환경을 갖추었다면, 이미 글쓰기 근육 만들기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1,2 장을 통해 글쓰기 나이를 측정하고, 기초체력을 쌓은 후 3장에서는 부위 별로 골고루 글쓰기 근육을 단련할 수 있도록 한다. 오감을 활용해 공감 가는 문장을 쓰고, 대화체를 넣어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쓸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설명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꼭지 끝에 15분 PT 과제를 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글쓰기 근육을 키울 수 있게끔 한다. 이 책은 글쓰기는 좋은 것이니,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하라 라고 막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선생님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과제를 부여함으로써 독자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한다. 책을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글을 쓰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글쓰기 초보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알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매일 10km씩 달리는 지를.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체력이 좋다는 것이다.
운동과 글쓰기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고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한다. 어찌 보면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지만 막상 끝내고 나면 '내가 오늘도 해냈다'는 만족감이 밀려온다. 이 만족감과 성취감은 내일 또 달리게 하고, 한 글자라도 더 쓰게 만든다. 매일 운동을 하고, 한 편의 글을 쓴 사람은 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내가 해낼 것임을 말이다.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내가 대응하는 방식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무의식적으로 살 때는 잘 모르죠. 글로 정리해보면 그동안 몰랐던 나의 내공, 숨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리적인 사람인지, 이타적인 사람인지,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쓰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나를 잘 알면 더 잘 살게 됩니다. 잘 살면 더 좋은 글을 짓습니다.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 중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하루하루 더 잘 살고 싶고,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 부족한 글쓰기 근육을 골고루 키울 수 있게끔 도와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글쓰기를 하다가 막힐 때, 혹은 '글태기'가 올 때마다 들춰봐야겠다.
글쓰기를 이제 막시작하려는 '글린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이 책과 함께 글쓰기 PT를 받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매일 글쓰기 PT 과제를 수행하면, 거침없이 첫 문장을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속 쓰면 달라지긴 할까? 글을 쓰며 늘 의심하곤 했다. 이 책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에게 확신을 준 책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라고, 그러면 언젠가는 글쓰기 근육이 탄탄하게 붙을 거라고. 그리고 글을 오래도록 잘 쓰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