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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an 09. 2022

4. 인정하고 나면 보이는 것들

마음의 병, 우울증을 건강하게 이겨내는 법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했듯 18살의 여름, 나는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미국의 한 학년은 8월에 시작해 5월에 끝이난다. 그리고 2달 반의 긴 여름방학을 맞이하는데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그 시기에 한국에 나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힘든 1년을 보낸 나도 그 시간동안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다. 두달 반 동안 나는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내 자신이 그렇게 우울하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가족들과 장난치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우연히 들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나에게 '그동안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었어요?' 하고 물어보셨다. '질문이 뭐 저래. 대체 의도가 뭐야?' 속으로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현재 나는 우울증이 매우 심한 상태라고 하시며 지금 이 상태로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것 자체가 대단한 상황이라고 하셨다. 심지어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부모님께 혹시 내가 원치 않았는데 유학을 억지로 보내셨는지 여쭤보며 유학을 그만두는게 좋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친구가 좋은 사춘기 중학생이였던 나는 한없이 기쁘게 떠난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기회를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떠난 유학이였는데 두 분이 이런 말을 듣고 계신다는 사실이 참 죄송했다. 우리 엄마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우울증? 그런 단어는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 단어를 병원에서 듣게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혼란스러웠다는 말이 더 맞겠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는 어색했다. 나는 마치 놀라지 않은 척, '난 내가 그런 줄 알았어' 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 말이 엄마에게 위로가 될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을 더 찢어지게 할 줄은 몰랐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홀로 조금 방황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부정하며 살았던 것 같다. 꽤나 열심히 부정했는데 병원에서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라는 사람이 지금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확인 받은 느낌이 들어 첫 몇주는 괴롭고 아팠다. 차라리 병원에 가지 말걸 -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는 진짜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늘 밝고 당당했던 한국에서의 나는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방안에서 눈물로 밤을 지세우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그 어린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래 나 아픈거 맞아.
근데 약도 열심히 챙겨먹고, 무조건 이겨낼거야.

많은 양의 약을 챙겨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라는 말만 의지하며 살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이 병을 이겨내보자. 그렇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깡이라고 해야할까.


내 유학생활 중 가장 어두웠던 이 시기에 나는 더 이상 앉아서 울기만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일어나 걸었다. 눈물나고 경이롭기 까지 했던 그 치유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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