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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Sep 17. 2023

무의식을 지배하는 야만성의 습격, 영화 '잠'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계약에 관하여


잠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를 소개하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잠 매우 즐긴다. 세상에 애주가, 애연가라는 단어 있으면 애가라는 단어가 없음을 비통해할 정도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인간처럼 깊은 잠에 빠지는 동물은 대개 포식자에 해당. 식자의 위치에 있는 동물제 닥칠지 모르는 포식자 경계하느라, 무방비해질 정도로 깊은 잠을 자지 않는다. (물론 그런 초식동물인  주변의 안전이 보장되면 옆으로 벌렁~누워 잔다는 사실이 나중에서야 알려지긴 했지만)


여기에 근거 없는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포식자도 아닌 주제에 당당히 깊은 잠을 자는 인간의 은 분명 인간의  사회적인 성, 서로가 서로를 포식자로부터 보호해 주고 부족이나 국가와 같은 조직을 꾸려 자연에 대항한 역사가 오래되었때문에 나타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영화는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배우자가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 모든 비극과 위기가 시작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내가 추측하는 영화 '잠'의 모티브와 해석에 대한 이야기이다.



MOTIVE1. 우리를 야만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적 계약에 대해


홉스부터 루소까지, 근대 서양의 철학가들은 국가의 사상적 근간으로 '사회 계약설'을 세웠. 그 내용을 간단 요약하면,  자연 상태에서는 개개인의 안전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므로  일종의 계약을 맺어 사회를 구성하고 개개인(시민) 권리 국가에 위임하여  보호하게 했다는 이다. 소는 이런 계약 없더라, 인간의 선함 바탕으로 서로의 자유보장하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겼. 그러나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인간의 이 존재하는 인의 자유의지를 해하더라도 이득을 추구하는 이들이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앞서 소개한 나의 '잠'에 대한 도 이러한  같이 한다.   


'나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매일 일정 시간을 무방비한 상태(잠)에 빠져야만 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내건 의요, 무언계약이다. 이 계약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혹은 누가 어기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국가가 가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잠에 빠지듯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무방비한 상태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인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계약 중 하나인 결혼을 맺었음에도 현수의 '잠'을 계기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 '잠'에서 부부를 위협하는 것은 학자들이 사회 계약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지목 탐욕이나 도덕적 타락 아니다. 현수가 몽유병에 빠져 행사하는 폭력은 어떤 악의나 의도도 담기지 않은  무의식,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행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MOTIVE2. 사회 계약을 위협하는 '잠'이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잠을 무의식으로 통하는 연결통로로 여겼다.
매일 밤 낯선 사람이 깨어난다


정신 분석학의 기초를 세운 프로이트는 을 자는 도중에 꾸게 되는 꿈을 억압된 무의식과 욕망의 표출이라 보았다.   무의식은 평소에 자아(EGO) 혹은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 있는데,  린아이가 건을 어지르 혼이 나고 어른이 법을 어기면 형벌을 받듯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고픔, 공격성, 성적 욕구 등 무의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유병에 빠진 현수는 평생에 걸쳐 학습해 온, 이 무의식 조절하는 장치가 마치 고장 난 사람처럼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보인다. 때문에 유병에 빠진 현수는 문명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 식탐, 장실에 들어가지 못하자 거실에서 오줌을 누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행동한. 우자인 수진은 현수의 몽유병을 처음엔 병으로 이해했지만, 아끼던 강아지가 잔인하게 죽임 당 것을 계기로 '사실 잠을 자는 현수는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귀신이 씐 상태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게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런데 악질적 이게도, 현수의 무의식 조절장치가  고장 나게 된 이유는 의사의 입으로 전부 먼저 설명된다. 심지어 해결방법까지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의사의 조언은 비교적 정확했다
'여기 보면 뇌파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상태가 보이시죠? 규칙적인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현수가 보인 증상은 의사가 내린  딱 맞아떨어진다. 플릿에 정리될 정도로 흔한 현상이라며 현수와 수진을 안심시키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이러한 수면 장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수진은 현수가 겪고 있는 '극심한 스트레스'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만약 수진이 진정으로 현수를 이해했다면 몽유병의 원인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을 꼽지 않았을 것이다.


현수는 배우라는 꿈을 위해 한평생을 달려왔지만, 가정을 이룬 나이임에도 아직 드라마 속 한두 마디 대사밖에 담당하지 못하는 조연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스케줄은 항상 야간 촬영으로 가득 차 있고, 우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항상 흔들렸다.(영화를 보면 배우를 그만두고 부업을 알아보겠다고 수진에게 말하고, 이를 수진이 말리는 그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처럼 표현된다.) 또 영화에 직접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현수가 간접적으로 받았을 스트레스에 대해 유추 수 있는 장면이 여럿 있다. 사한 대기업(롯데)을 다니고 있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인 수진 아기를 따로 돌봐 줄 수 있을 정도로 근사한 독채를 지닌 외가 쪽을 보 짐작하건대, 현수 부부가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 외가 쪽의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니 현수가 느끼고 있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아내에 대한 미안함,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이다


하지만 수진은 이러한 명백한 정황과 증거를 읽어내지 못하고(가까운 부부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기에 그럴듯한 증거만 수집하여 결국 현수 귀신에 씌었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빠지게 된다. 지어 귀신으로 지목된 사람은 바로 아래층에 살았던 할아버지이다. (수진은 그 할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을 텐데)  순간  영화는  오컬트 분위기가 담긴  장르 영화에서, 기생충과 같은 사회적 함의가 담긴 영화로 나아간다.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던 현수와 수진이, 실상은 서로에 대해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믿음에 빠졌다는 점에서 남녀혐오, 불신 등이 팽배한 오늘 사회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MOTIVE3. 무너진 무의식 조절장치와 미스리딩
잠든 현수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싹 틔우는 수진

다시 사회계약으로 돌아와서, 영화 속 비극 결국 수진이웃과 남편 사이에 맺어진 사회 계약을 불신하고 , 직접 폭력으로 위협을 배제하고자 나 끝에 일어났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오컬트적인 배경과 광기 넘치는 수진의 모습이 부각되었지만, 퇴마의 방법은 폭력과 협박이라는 야만의 법칙에 가까웠다.(역시 귀신도 물리법칙으로 해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진이 남편인 현수와의 사회계약을 저버리고, 끝내 폭력을 선택하게 된 원인 크게 4가지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부부관계인 현수와 수진은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 최종장에 와서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

두 번째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여 오해를 키우는 존재가 근처에 있었다. 심지어 그 지식을 전달한 의도조차 자식의 안위를 걱정했기 때문으로, 악보단 선의에 가까운 동기에서였다.

세 번째로 수진은 그 지식을 필터링 없이 받아들여, 신뢰도가 높은 다른 증거들은 부정하고 본인의 입맛에 맞는 증거만을 신뢰했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만약 수진이 아랫집 할아버지의 선량함을 믿었다면 어처구니없는 퇴마 소동까지 벌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사회에선 수와 수진사이에 벌여진 미스리딩 영화 속처럼 반복되고 있다.  현수처럼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탓에 무의식을 조절하는 장치가 망가진, 몽유병에 빠진 것과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폭력의 조절 장치가 망가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현수가 그랬듯 미래에 대한 막연함 불안감을 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이들이 대다수이다. 들의 폭력과 잔혹함은 마치 귀신이 들린 것처럼 이해하기 어워 마치 악의에 가득 찬 귀신같은 존재로 비치게끔 한다. 그러나 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의사가 현수에게 조언했듯 '제시간에 잠들고, 술에는 입도 대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 즉 이들을 둘러싼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이를 치료하거나 개선하는 일이다.


러나 진이 현수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던 것처럼, 람은 각자 다른 인지세계를 살아가기에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서로를 이해하배려하기는커녕, 오해와 불신을 키우는 스피커들이 도처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한다. 그중 일부는 수진의 어머니와 같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서 잘못된 지식을 퍼트리지만  결국 잘못된 지식 서로에 대한 혐오만을 기도 한다. 물론 스피커 중에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부채질해 카리스마를 연출하고, 이득을 취하는 무당 같은 이들도 존재한다. 그 혐오가 일정 선을 넘 때, 사람들은 수진처럼 대 사회를 성립시킨 사회 계약 부정하게 하고,  다른 폭력을 정당화기에 이른다. 결국 그것이 모든 관계를 파탄 내는 신호탄이 될 거라고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처음엔 유재선 감독이 봉준호 감독 밑에서 연출을 담당했기에, '기생충에서 보던 카메라 워크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반복해서 곱씹으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기생충이 지닌 오묘한 불쾌함 닮았다고. 영화 잠은 사회의 보기 싫은 면들을 억지로 까발려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기생충을 닮았다. 래서 기생충이 무척 재미있음에도 두 번 감상할 엄두를 못 내었던 것처럼, 이 영화도 호러 영화로서 무척 재미있었지만 두 번씩이나 돌려보기엔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화였다.(그런 의미에서 기생충에도, 영화 '잠'에도 출연하셔서 나에게 '인생에서 보기 괴로웠던 영화'를 2개나 선사해 준 이선균 배우님께는 차마 입으로는 담지 못할 감사함을 전해 본다)


영화는 마치 무당에 말에 낚여 무속신앙에 의지하게 되는 수진과 몽유병에 빠진 현수를 문명에 반대되는 야만처럼 그리지만, 사실 여기에 걸맞은 야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현수를 몽유병에 빠지게 한 사회적 기제들, 이를 테면 법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 환경이나 불안정한 미래를 만드는 빈부격차,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울 수 없는 환경 등이 될 수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문명의 도리에서 벗어난 야만이 불러일으킨 폭력과, 이 폭력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한 두 야만 간의 대결이라는 점이 내게는 무엇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호러, 스릴러 영화로서 가져야 할 쫄깃한 맛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화이다. '소설에서 등장한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법칙에 충실해서, 영화 속에 등장한 복선을 쏠쏠이 챙겨주는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공포 영화보단, 사회적 영화로서 세상에 비치기를 바란다. 몽유병을 꾸는 이들을 귀신 들린 사람으로 취급하기보단, 그들이 몽유병에 빠지게 된 원인에 더 관심을 가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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