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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Apr 15. 2024

소설 | 보트피플

봄이 오면 회사에는 조직개편의 칼바람이 분다.

벚나무 아래 푸른 하늘로 쭉 뻗은 빌딩에서는 미소 뒤로 은밀한 총칼이 오간다.

본인이 한 회사에서만 7년 넘게 근무하면서 매해 봄에 누적한 관련 쿼트는 다음과 같다.


"이구역의 미친년을 올리는거지. 00님이 내게 바라는 게 그거야."

> 승진을 위해서, 미친년이 되어야 한다.


"00님, 회사는 늘 청소가 필요해. 유능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을 밀어내야 해."

> 해고가 어렵기에, 수동공격으로 반대편을 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칼을 꽂는걸로는 부족해. 싹을 잘라야 해."

> 적장은 애매하게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


정보와 인맥을 활용한 미묘한 심리전이 빌딩의 종과 횡을 가로지른다.

회사의 진골로 자리 잡고 나서부터는 이 전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직장생활이 15년을 넘은 리더급 인원들에게는 저마다의 무기가 있다.


*A리더; 은밀하게 사람을 갈아낸다. 미소와 사소한 호의로, 기대와 희망을 만들어낸 다음. 아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주특기다.

*B리더; 모든 일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눈과 귀는 열어둔 채 입은 닫혀있다. 침묵이 무기이다.

*C리더; 매사의 행동대장이다. 문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적극성과 커뮤니케이션의 투명함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 A, B, C 중 누가 가장 권력자일까?

> 정답은 A이다.

- 반면, 그 반대로 가장 고생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은?

> 정답은 C이다.




==


본인은 휴지줍기나 창문닦기 같은 사소한 일에 기여하면서 ABC의 전장에 나갈 일이 없었는데.

발단은 새로운 CEO의 부임이었다.


A리더가 하줍잖게 여기던 휴지줍기에 가까운 프로젝트가 신규 CEO의 눈에 든 것이다.

하필 내가 홀로 이끌어오던 과제.


어떠한 우산도 방패도 없이

ABC의 이권다툼의 한가운데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


"내가 원래 그거 하고싶다고 했었잖아. 우리가 언제 그런게 의미없다고 한 적있었나?"

말 바꾸기가 시작되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포장해내는 능력은 A의 주특기이다.


한 번도 발걸음하지 않던 나의 자리 건너편으로 A가 의자를 돌려 앉는다.

"블루베리 먹을래요?"


먹을까 말까.

겪어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나의 인간관계 원칙.

먹는다를 선택한다.

"고마워요."


"아니 결국 그렇게 되었잖아. 우리 조직이 CEO님 직속으로 갈 것 같아."

끄덕끄덕.


내가 쥐고 있던 휴지줍기 과제가 한 몫 했다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의도가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던 방향인데. 난 항상 그런게 어려워. *보트피플.. 마음아파서 정말."



*보트피플: 전쟁에서 낙오하여 작은 보트를 타고 머물 곳을 찾아 헤메는 난민들을 의미한다.

  



==


그 날부터 나의 시선은 어느쪽이 보트피플이 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A가 함선 아래로 내려놓는 대상. B일까 C일까.


이미 너무 명확한 답안이 있었다. A와 15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B의 손을 놓을리가 만무했다.

무엇보다 C는 항상 A의 의견을 반박하곤 했기에, 오랫동안 눈엣가시였을 터이다.






'이런.. 오래간 내가 충성해온 보스는 C인데..'

딜레마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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