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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빈 Jun 12. 2024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는 삶이란 원시생활과 다를게 없다

우가우가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 무인도에 들어가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왜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한창 방송작가를 하던 시기에 오랜 기간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상황은 이랬다.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 12만원, 관리비 12만원이 나오는 임대주택에 거주했는데 3번의 월세를 미납하면 퇴거를 해야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나는 총 두번의 임금체불을 당해 소송을 진행하던 시기였고,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장기 백수가 되었다. 모아둔 돈도 없고, 체불을 당했으니 카드로 살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연체가 되어 돌려막기를 했다. 월세는 두달에 한번 내며 삼진아웃을 면했고, 공과금은 미룰 수 있는 달까지 미뤘다. 밥은 홈플러스의 pb상품인 5봉지 2천원짜리 라면을 하루에 하나씩 먹으며 버텼다.


일을 아예 안할 수는 없으니 당시 프리뷰 알바를 밤새도록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이마저도 미지급되거나 연체되어 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집에도 큰 우환이 생겨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한채 잘 지내고 있다며 거짓말로 지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기 때문에 식비를 줄이고, 생활비를 줄였다. 결국 6개월간 백수였던 나는 집안에서 영양실조가 걸리고, 우울증이 왔다.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고, 시간은 가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실도피밖에 없었다. 그때 만원짜리 프랑스자수 키트를 사서 하루 12시간씩 하고서는 잠이 들었다.


이때를 생각해보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의식주 생활을 하지 못했다. 잘 곳은 있었으나 언제 퇴거조치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의와 식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시간을 버텼던 것 같다. 지속된 연체로 신용등급이 떨어져 햇살론 조차 받지 못했던 상황이고, 주변에 손을 빌릴 수도 없다보니 그렇게 사회에서 사라지나 싶었다. 


아마 그래서일거다. 차라리 지금이 원시시대였으면 하루 먹을거리만 찾아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니땅 내땅의 개념도 없으니 한 몸 누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돈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겪었던 경험은 인생에 있어 굉장히 힘든 것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 이후로는 아예 방송계를 떠나 일반 직장으로 전직을 했고, 겨우 소송에서 이겨 일부 급여를 받아 살아남았다. 당장에 쓸 돈은 없어 300만원짜리 고금리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8개월만에 상환을 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마이너스통장의 길로 빠졌다. 개인의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보니 언젠간 회수되겠지 하고 쏟아부은게 실책이었다. 조각조각 보면 월급만 받으면 바로 갚을 수 있는 돈이지만 이게 쌓이고 모이니 엄두가 안나는 상황이다. 다만 이거야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큰 불안감이나 걱정은 없지만 이게 지속되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직책이라는 것은 직급과 책임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을 우리 회사에서는 자주 쓴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책임은 과연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많이 의심이 돤다. 


우가우가 원시생활을 했다면 난 얼마나 살 수 있었을까, 무리의 우두머리는 되보았을까. 궁금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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