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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빈 Jun 27. 2024

공부에 늦은 나이는 없다 하지만 이제 늙음을 곁들인..

전세계 국가들이 가장 이상으로 생각하며 지향하고 있는 국가의 모습은 '복지국가'일 것이다. 그리고 재원의 지원을 통한 복지실현이 아닌 모든 국민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지원을 통한 복지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전전 정부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한 고졸취업, 선취업 후진학을 계획으로 세웠다. 학력 인플레가 심하고 그것 때문에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니 일단 취업부터 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학력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특성화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장인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방침으로 많은 고딩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시간이 흐른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욱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우선, 호주의 마이스터 제도를 도입한다며 정부는 직무능력표준 즉, NCS를 개발했지만 현장에서의 실무와 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던 고딩들은 취업후 현장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현장 역시 학력도 경력도 없는 고딩들이 뭘 알겠냐며 차별, 알려줘봤자 금방 군대가고 퇴사할거라며 기술전수 안함 잡일만 시키고 결국 서로간의 갈등만 활활 불타오르게 된 것.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취지는 정말 좋았지만 결국엔 박근혜가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일을 다시 함으로써 그의 광휘를 잇기 위한 하나의 오마주이자, NCS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결국 취업준비생들의 일거리(?)를 더 늘렸기 때문이다. NCS가 없던 시기에는 학력이 곧 스펙이었고, 추가로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으나 현재는 여기에 NCS라는 뜬금없는 시험이 생겼다.


NCS, 국가 직무 능력 표준

결국 하나의 직무를 세분화하여 체계적으로 배우고, 이를 통해 장인의 역량을 가진다는 것인데 우째 우리나라는 이것조차 객관식, 서술형 시험으로 만들어버리니 취준생들은 돌아버린다. 학력, 학벌보다 능력 위주의 삶을 그리겠다던 정부의 포부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또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쉽게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도 집안의 부유함으로 우위를 나눴고 누가 어떤 벼슬을 받았는지, 누구의 자식이 어떤 학교를 갔는지 등을 통해 계급을 나눴다. 그 시대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지금의 취업스펙이 정해졌으리라.


12년간 하루의 절반 이상을 공부에만 매진했으며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피터지게 싸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능력만 있으면 돈을 잘 벌고, 워라벨에, 사회적 지위를 얻는걸 좋아할까? 능력은 누가, 어떻게 책정할 것이며 어떤 기업에 취업을 해야 능력에 맞게 갔다고 할까?


내가 남들보다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치자.


대기업의 하청의 하청 기업의 이사직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발전에 이바지하는 자리를 부여받았다. 직위가 직위인 만큼 다른 하청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겠지만 급여는 지금의 내가 만족하다는 수준으로 받는다. 당신은 이게 능력주의시대라며 찬사를 보낼 것이다.


맞을까?


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대기업에서 모셔가야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지금보다 빡샌 일은 좀..


능력만 본다며 다른 쪽이랑 경쟁은 왜시켜?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신은 곧 능력주의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여하튼 여러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능력이고를 떠나 학력과 학벌 스팩은 여전할 것이며,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성인학습이 되었든, 평생학습이 되었든 꿈에 그리던 학력향상이 되었든, 직업훈련이 되었든 내가 은퇴하고, 죽기 전까지 지속해야만 한다.


그래서 직딩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직작을 다니면서 학생처럼 공부해야 하는 사회. 나 역시 언제까지고 일개미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여러가지 공부를 하다 이제는 학력과 자격증을 동시에 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회사에 있는 상황에서 학기당 21학점씩 수업을 듣고, 몰아치는 업무와 과제를 처리하며 주말에는 쪽지시험과 중간, 기말을 보고 있는 삶이 어언 2년째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지 싶다.


하지만 내가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은 강의를 틀어놓은 채 일을 하기도 하고, 난데없는 야근으로 인해 쪽지시험 응시를 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업무의 연장같은 마음으로 공부하다보니 기억에 남는 것은 딱히 없다는게 문제다.


결국 공부에는 나이가 없지만 때는 있다고 본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공부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날은 인생에 얼마 없다. 그러니 공부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충분히 생각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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