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명확한 약속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미약한 시작에 창대한 현재를 누리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창업자들이 초기 멤버들, 특히 공동창업자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는 부분을 적잖이 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서로를 믿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온 이들의 낭만적인 유대감은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지요.
아마 이는 많은 창업자와 공동창업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이번엔 한 번 이런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한 사람의 비전 어린 연설에 감명받은 개발자가, 아직 사업자도 없는 예비창업자와 함께 일을 하기로 합니다.
개발자는 실제로 창업자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열정을 다해 이야기하던 그 세상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개월간 노동법에 보호도 못 받을 무급노동을 하며 건강보험 재직 기록에도 못 남기는 근로를 밤낮없이 이어갑니다.
서류상의 공백기는 길어져가고 통장 잔고가 슬슬 바닥을 보이지만, 언젠가 이 사업이 빛을 보았을 때 이 시절을 돌아보며 창업자와 함께 뿌듯해 할 날이 올 거라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떨쳐냅니다.
이 모든 것이 예비창업팀의 코파운더에게는 당연한 일이니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파운더 개발자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됩니다.
당장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아픈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정도의 자금도 충분치 않습니다.
창업자는 공동창업자인 그를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그도 같은 상황이다보니 현실적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은 딱히 없습니다.
비전을 이야기하던 첫 만남에도,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창업자가 가진 것은 여전히 그라는 사람과 그의 말 뿐입니다.
창업자의 꿈을 위해 자신이 현실적으로 끌어안게 될 리스크들을 애써 무시하던 개발자는 그제야 현실과 마주 앉아 1:1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내가 그의 꿈을 위해 간 쓸개 다 바친다고 해도 그는 내가 위험한 순간에 나를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픈 건 알지만, 그래도 당장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어지면 자신이 곤란하니 아프더라도 계속 자리를 유지해달라고 합니다.
투자를 받을 때 개발자가 예비 코파운더로 있어야 투자 가능성이 더 커지니 일은 안 하더라도 이름만 올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창업자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은 자신의 책임으로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창업자의 목표는 그저 '사업을 잘 지켜내는 것' 뿐입니다.
사업에서 내가 필요없어지면 그는 나를 뺄 것이고,
필요하다면, 내게 대가는 커녕 내가 무료로 제공한 수많은 기여들은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릴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법인도 없이 매일 하는 지분이니 스톡옵션이니 하는 이야기도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이제야 새삼 느껴집니다. 잠재적인 이득까지 끌어 따져보아도 그는 지금까지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들은 '내 사업이기도 하니까.'라는 마음으로 적잖은 비용을 사비로 부담해 왔으니 손해만 잔뜩 본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깔끔하게 정리된 구조적인 작업보다 속도와 빠른 변화의 중점을 둔 작업물은 어디 취업할 때 포트폴리오로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개발자는 잃기만 한 채 팀을 떠나게 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작업물, 그가 샜던 모든 밤들과 깎여나간 건강은 어떠한 대가로도 감사 인사로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값도 없이 시간과 노동력과 작업물만 팀에 바치고 나온 그가 중도에 팀을 포기한 죄인 취급당하며 이 모든 시간들이 매듭지어집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창업자가 이런 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짜 직원'을 구하려고 '공동창업자'라는 타이틀을 남발하는 경우도 실제로 존재하고,
반대로 너무 순수해서 모두가 자신처럼 헌신할 거라 기대하는 창업자도 있습니다.
심지어 재능을 투자했으면 책임은 투자한 본인이 져야한다는 생각으로 남의 시간과 재능을 투자받은 창업자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는 이들도 있죠.
그리고 이러한 예비창업자들의 생각은 실제로 법에 걸리는 일도 아니며 틀린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예비창업팀의 코파운더로 영입을 제안 받는 입장에서는 '나는 이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를 꼼꼼히 점검해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비창업팀에 코파운더로 들어가는 일은 정말 신중해야한다고 말하는 저또한 예비창업자입니다.
8월 중으로 MVP를 공개하기 위해 열심히 사이트를 만들고 있죠.
부족한 역량으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이후 로드맵을 짜면 짤수록, 이 프로젝트를 언제까지나 혼자서 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은 매일 하게 되고,
그럴수록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꿈을 꾸며 함께 일해 줄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또한 절실히 듭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역시 어떻게든 코파운더를 찾아야 할까?
지금은 아무리 내가 스톡옵션이니 지분이니 이야기를 한대도 아직 매출도 없고 투자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정말 말 뿐인 약속일텐데.
내가 법적으로 완벽히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말로 사람을 설득해서 위와 같은 수많은 경우에 대한 리스크와 불안감을 지게 하는게 맞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사실 예비창업팀을 비롯한 극초기 스타트업에 인재가 들어오는 것은 근로보다는 '투자'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자금을 투자하는 VC들에게 그러하듯, 재능을 투자받기 위해서도 믿을만한 지표를 보여주고, 이후 가져갈 수 있는 이득과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에 대한 계약서를 쓰는 것이 진짜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요?
나의 꿈, 나의 이상, 나라는 사람 하나로도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능력이겠지만, 그건 창업자에게 득이 되는 일일지언정 상대방을 위하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언제까지나 혼자서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또 초반에 속도를 내기도 어렵겠지만,
투자를 받거나 매출이 생기고, 법인을 설립하여 실제로 지분을 나누고, 사대보험과 정당한 연봉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서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합니다.
극초기 스타트업에서 이런 생각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주는 신뢰가 더 안전하고 단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혼자서라도 큰 성과를 내보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해보기 위해 작게나마 도전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과연 저는 혼자서
제 사업 초기에 본인의 재능을 투자해줄 수 있는 인재가
객관적인 지표를 꼼꼼히 검토하고도 들어오고 싶어할만한 수준으로 일을 키워볼 수 있을까요?
과연 이 도전의 결론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가 될까요?
아니면 '옳은 가설이었고 현재에 만족한다.'가 될까요?
저도 결말을 알 수 없는 도전의 과정들을 주 2회씩 현재의 경험을 적어 남겨보고자 합니다.
서른살 막바지에 시작하는 저의 도전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