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샘 Jul 06. 2023

교직 탈출은 지능 순?

초등 교사로 살아남기

(교사 자문자답 - 아무도 묻지 않은 교육 문제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해 봅니다.)


Q: 요즘, 교사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교직 탈출은 지능 순이라 고들 합니다. 물론, 초등 교사로 살아남는 게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건 저도 충분히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굳이 저는 현재 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기력해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저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마음을 바꾸어서, 학교 밖으로 나가는 걸 준비해야 할까요?


A: 저는 어릴 적부터 초등 교사가 꿈이었어요. 돌고 돌아 늦게 교대에 입학하였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교직에 입문하였습니다. 교사를 꿈꿀 때는, 임용에 합격하고 초등 정교사가 되면 좋은 날만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령 첫해부터 쉽지 않았어요.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관리자 누구도 쉬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경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로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가면,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어려움이 해결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3년 차 교사가 되었어요. 3 학급 작은 학교에서 5명의 반 아이도 가르쳐보고, 교감 선생님이 두 분 계시는 큰 학교에서 30여 명의 아이들의 담임도 맡아봤고요. 중간에 학년 부장 교사를 맡아서 6~7분의 학년 선생님을 이끄는 역할도 해봤습니다. 아직 고경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들 못지않게 여러 가지 경험을 했죠? 그러면 이제는 교직 생활이 조금 편해졌을까요?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억지로 교직에 입문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경력도 조금 쌓였는데도 그래요. 정부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곤 해요. 교육부를 거쳐서 학교 현장으로 교육과 무관한 잡무가 새롭게 추가되는 일이 많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교육과 무관한 잡다한 업무가 한해 한해 더욱 쌓여갑니다. 아이들은 어떤가요? 미디어에 일찍 노출되어서 그런지, 또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형제자매가 없이 금지옥엽 자라서 그런지 어려운 아이들, 즉 금쪽이가 더 많아지는 것만 같아요. 학부모는 편안한가요? 퇴근 이후에도 개인 휴대전화로 수시로 연락하기도 하고, 아이의 말만 듣고 비상식적인 민원을 넣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요즘은 더욱이 아동학대를 빌미로 곤란한 요구를 하고 고소하는 학부모도 종종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소통이 안 되는 관리자나 동료 교사를 만나면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관리자도 동료 교사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로또 당첨을 바라는 심정으로 좋은 동료를 만나기를 기대할 뿐이에요.


 그러면 정답이 이미 나와 있지 않나요? 괜히 ‘교직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교직을 떠나고 있는 것도, 교직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처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교직을 떠날 형편도 안 되고요. 또한 어려움이 많기는 하지만 아직은 교직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걸 선택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선생님들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직에 남기로 했다면 어떻게 잘 살아낼지도 고민해야 하겠죠. 교직에 남는 분들께는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남아있는 걸 선택하기로 한 거니까요.


 저도 현장에 남아서, 여러 가지 저만의 기준을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학교 현장에서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거예요. 예전에는 성실이 미덕인 시대였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마는 아닌 것 같아요.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요. 학교 일을 열심히 하면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하고 인정해 주기보다는 잘한다고 일만 더 시키는 경우도 많거든요. 또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최선을 다해서 100 만큼 쏟아붓는다고, 모든 사람에게 100만큼 돌아오지도 않고요. 내가 들인 노력과 수고에 비례해서 상대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대치를 낮추고 50 정도만 주려고 해요. 너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반응이 미적지근해도 덜 억울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공무원 마음가짐을 조금 내려놓는 거예요. 공무원이라고 하면, 오직 국가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공무원인 내가 작은 부속품이 되어서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도 들고요. 그렇게 ‘내’가 없이 헌신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남는 게 무엇일까요. 그래서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건, 나를 생각한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하는 일들이 나에게도 의미가 있도록 하자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교사로 생활하면서 학교 이야기(교단 일기)로 글을 썼어요. 그 글들을 모아서 책도 냈고요. 이런 결과물이 자기 경력이 되고,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위한 결과물들이 모이면, 다음에 개인을 브랜드화하는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퍼스널 브랜딩을 해놓으면 지금처럼 학교에 남아있는 걸 선택할 때도 의미가 있겠지만, 여러 사정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이후에 관련 사업도 할 수 있을 거고요.


 학교를 떠나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선생님, 또 새롭게 도전하여 교사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학교 현장에 남아서 열심히 생존하고 계신 선생님들도 그분들 못지않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현장에 남든 그렇지 않든,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함께 응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길 전화 한 통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