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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Apr 27. 2024

"저는 이성적인 게 중요한 사람이라 감정호소는 좀.."

이라는 지랄. (feat. 민희진)

상황:
A와 B가 토론을 하고 있다. 논쟁을 하다가 A가 감정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린다. 몇 분간 훌쩍대느라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다. 시종일관 평정을 잃지 않은 B는 괜히 승리감에 젖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이런 상황을 보며 우리는 흔히 A를 "감정적인" 사람, B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내비치면 바로 감정적인 사람이 되고 이성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마치 감정과 이성이 서로 반대되는 성향인 것처럼. 내가 보기엔 이것처럼 한심한 착각이 없는데 한국은 "이성"중독이 심해서 그런 인식이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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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간단하게 말하면 판단을 할 때 팩트와 데이터를 고려하는 것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이득과 손실을 계산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행동 경제 심리학에서 초기 연구가 많다. 그런데 연구 결과 팩트와 데이터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바로 여기서 오해가 생긴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감정적으로 보인다", "감정적인 표현을 한다"가 모두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능력이 없으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알아챌 수 있어야 상대방의 감정도 알 수 있고, 상황에 따른 '적절함'뿐만 아니라 '배려'와 '온정'의 태도까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공감 능력 향상을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내 감정 정확히 알기"부터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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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관장하는 호르몬이 나오는데도 그걸 몸의 주인이 모르면 그의 전전두엽이 그 감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데이터/팩트 취합을 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즉, 반대편 데이터를 무시한 채 그냥 자신의 입장이 다 오류 없이 맞는 줄 알게 된다.

'감정 호르몬'이 안 나올 수는 없다. 감정이란 우선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자극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우리 몸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생리현상을 조절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게 안될 순 없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만난 인간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동공이 확대되고, 심장이 빨리 뛰며, 방광 수축을 억제하는 등 '튀기 좋은' 몸 상태가 되는데 그런 변화를 '두려움'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인간들은 호랑이에게 죽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감정이 진화되었다. 같은 교감신경 활성화를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 마주하면 사랑이나 설렘과 같은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호랑이를 만나든 이상형을 만나든 몸의 반응은 같다. 감정의 이름이 다를 뿐.

결국 자기는 "감정적이지 않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몸을 가진 것이라기 보단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성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으면, 사실 저 사람은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몰라서 이성적이라고 착각한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본다.

인간은 이성적 사고에 너무나 부적합한 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팩트"와 "데이터"를 가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이 온전히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데이터"의 편향성 등 오류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엘리트 석학도 예외 없다.
인간이 왜 이렇게 이성적 사고가 안 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있었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데이터 부분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성"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은 정보과 데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이성적이라는 것은 사실 "이성적이라는 착각"이 맞다.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주 간단한 이성적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들도 뇌가 정보 취합을 못해서 실패한다. 인간의 뇌는 팩트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활동에 적합하지 않게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만났을 때 데이터 취합이 무슨 소용인가, 일단 튀어야지. 짧게 보자면 우린 이런 위험에서 벗어난 지 겨우 100년 정도 되었다. 인류는 25만 년간 감정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따라서 이성 연구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말하는 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자신보다 비이성적이라고 착각한다."이다.

앞서 말한 감정 인지 능력(감정적 메타인지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동시에 상대방을 감정적이라고 비난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전전두엽이 감정으로 완전히 납치되어 자신과 다른 입장의 데이터, 팩트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로 보인다. 자신의 감정이 인지가 안되면 자기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기 데이터도 점점 편협해지고 상대측이 데이터를 제공해도 전혀 안 와닿게 되는 것이다.

석학 엘리트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입장에 대한 감정적인 기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이성이다. 아주 간단한 재확인만으로도 가능한 "이성적 선택"도 갑자기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다른 어떤 요인(돈이든, 외부 자극이든 뭐든)에도 무너지지 않다가,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순식간에 이성적 데이터 취합 능력부터 떨어진다.

그래서 요즘 연구는 다 이런 식인 듯하다: "왜 인간에게 이성은 이렇게나 드문가?" "왜 이성은 인간에게 이렇게 어려운 능력인가?"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요즘 흔한 '이성 집착, 감정 무시'라는 부끄러운 태도는 버릴 수 있게 된다.




결론:
1) 모든 사람은 내가 이성적이고 상대방이 비이성적이라고 착각한다.
2) 나의 이성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수적이다.
3) 공감 능력은 감정 인지 능력을 뜻한다. 내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면 나의 감정이 이성적 사고 과정을 방해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해서 상대방의 데이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4) 따라서 "감정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예를 들면 말하다 감정이 올라와 울컥하는 사람들)" = 비이성적이라는 결론은 틀렸다. 그 둘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희진 기자회견 방송 중 "감정호소"하지 말라는 일부 라이브 댓글을 보며.


참고자료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396584/
https://youtu.be/T9xapuNvtIQ?si=9DDG1bhR5-ts3xW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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