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gabond Feb 24. 2024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9살 우리 얘들은 나중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얘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될까?

대부분에게 어렸을 적 부모는, 자식에게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등대 같이 든든했을테다.

그러다 자식이 성장함에 따라 부모는 비례적으로 늙어가고

자식이 어느정도 성장하여 부모가 부모로써만이 아닌,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쯤부터

자식은 부모를, 기존의 정형화되어 주입된 특정 틀에서 벗어나,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자식이 마흔 언저리쯤 되면, 그 이전의 관계와는 상반되게,

자식이 먼저 한발 물러나, 부모가 마치 그들의 자식인양,

자식인 내가 그들의 부모인 양, 애정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감싸안을 줄 알아야

그래야 부모 자식간의 얽히고 섥힌 수많은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어느 지혜로운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는데,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어느 자식이,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만큼, 그만큼 부모를 보담을 수 있을까?


그저 이말 즉슨,

자식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갖게 된 부모에 대한 본능적인 기대감과 환상, 그로부터 비롯되는 실망감과 상처 등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부모 역시 그저 한 인간, 불완전한 한 생명의 인격체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모 역시 그저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구나.

그런 이해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즉, 부모를 인간으로서 봐라 볼 수 있어야

애처로움과 동시에 용서, 포용, 진정한 공감이 가능해 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모든 자식이 부모로부터 나오고,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부모의 모든 영향력을 흡수하며 성장한다해도,

부모와 자식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자식으누독립적인 인격체로써

부모와 다른 빛나는 개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인정과 존중이 자식에게 있어야

자식 역시 부모를 부모라는 역할 너머, 한 인격체로서 봐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그를 통해 부모를 향한 이해의 폭을 자연스레 넓혀갈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일방적이지 않은 쌍방향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부모의 보살핌, 사회의 통념에 따라 살다가

내가 누구인지를 찾고, 취향을 찾고, 지속적으로 변화와 번복을 반복하며 가치관을 성립하며

성장한 자식이 어느 순간,

본인의 부모가 본인과 다른 가치관의 인격체임을  마주하게 될 때

갑작스레 부모의 가면이 벗겨진 어색한 민낯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자식은 보통 감정의 혼동을 숨기고, 표면적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래, 삶에는 어떤 일정한 정답이 있지 않지.

서로의 인격을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같은 성인으로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서로의 다름을 쿨하고 명확하게 진심으로 인정해주어야

그래야 그것이 서로의 깊은 내면에 사랑의 거름이 되어, 서로의 삶은 물론, 그 관계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랄 수 있거늘,

서로에 대한 '인정' 이 부재하게 되면,

특지 자식은, 본인 나이가 사십이든, 오십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죽을 때까지 부모의 인정을 갈구하며

삶의 곳곳에서 상처의 꽃을 피우며 인정받고자 고군분투하게 되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상하관계로 크게 매몰되는 경향의 우리나라.

자식은 부모란 이름 너머에 서 있는 인간 존재를, 성장하여 어른이 되기 전까지 보지 못할 확률이 크고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 태산같이 행동하는 부모가 나와 같은 불완전한 인간 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당혹감, 거기서 오는 반감과 실망

그럼에도 부모는 성인이 된 자식을 자신의 울타리에 사랑이란 이름 아래 보호, 통제하고자 하는 태도

형태는 다르지만,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 존중해주기를 요청하지만 서로 그러지 못함에서 오는 절대적인 섭섭함과 실망.

이에 따라

어린 시절 찬란하게 빛나던 그 옛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희미하게

소통과 이해가 결여된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그냥저냥한 관계로

그 안에

아무도 터치못하는 사랑만이 덩그러니

그래서 종종 눈물이 차오르지.


서로를 남보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잘 안다고 자만하는 어리석음이 부모 자식간에 존재,

어찌 보면 이는 어리석음이기 보단 두려움, 회피의 표현일까?


과거 세상의 모든 것이였던 관계의 빛남을

어떻게서든 표면적으로나마 붙들고자 하는.

그렇게라도 인정 받고자 하는 본능인가.



늙어가는 부모가

그저 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사랑을 짓누르던 돌을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자유로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듦에 감사하며 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