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평화로운 수면 아래 오리들의 쉼 없는 발길질 처럼,
그녀 역시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 정의되는 현실적 조건들의 낯익은 가면을 덮어쓰고 오랜 시간 발만 동동거렸다. 그저 회사 집, 회사 집을 오가며 열심히 일했다.
일과 결혼에서의 힘겨움을 그대로 감당했고, 자주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가 꿈꾸던 찬란한 여름의 모습은 어릴 적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이었나.
매년 맞이하는 여름이란 계절의 모습은 한번도 예외 없이 언제나 짙은 녹음의 아름다움이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그녀 앞에 다가왔지만,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맞이한 여름의 실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사 생활의 고달픔, 노동의 역할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온갖 힘겨움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 그녀의 이기적인 나약함이 문제였을 수도, 어른으로써 당연히 당면해야 할 힘겨움을 확대해석하며 예민하게 받아들인 경향도 없지 않아 있을테지만, 어쨌든 이유불문, 결론은 사회인이 되어 맞닥뜨린 삶에서 도통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앞선 인생을 산 부모나,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해법이 없었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현실 조건 아래 배부른 소리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주어진 상황 아래 순응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의 방식 아니겠냐는 어르신들의 대답들, 그리고, 너만 유별난 게 아니라 우리들 역시 같은 처지다, 그럼에도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동료들의 현실적인 대응들은 결국, 그녀의 유난 떠는 예민함이 문제인 것으로 문제를 종결 시켰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에 다시 순종했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처지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한 기분에 무력해졌다.
철창 안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멀뚱이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길들여져 있다. 사육사가 주는 고기를 일정 시간마다 먹고, 낮잠을 자고, 그럼에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그럼 그녀에게 주어진 공간을 열심히 뛴다. 뛰기도 했다가 어슬렁 걷기도 했다가, 그러다 나가고 싶은 본능적 충동에 철창을 무서운 기세로 흔들며 날뛴다. 그러나 철창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냥 포기하고 사육된다. 그런데 만약 철장 문을 열어주며, 너 초원으로 나갈래, 아님 여기 동물원에 있을래, 동물들에게 물어보면, 동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좁디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맹수 호랑이와 사자는 나갈까?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원숭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장 안에 갇힌 그녀를 포함 우리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녀는 지금 당장 용기를 내어 나갈 수 있을까?
여름의 한낮,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멈춰 섰던 어두컴컴한 숲 속 길, 어디선가 희미한 빛 한줄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빛을 따라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한다.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고, 풀내음이 감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 당장 철장 밖으로 나가야만, 그녀가 기다리던 찬란한 여름의 풍성함이 그녀 안에 공기처럼 스며들 것 같다. 그래야만, 한낮의 뜨거운 여름 햇살이 그녀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다.
그녀는 용기를 낸다. 철장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을 한다. 다시 소녀가 된 것 마냥 들떠 있다.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철장 밖에 나가 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름을 만끽 할 수 있을까? 소녀가 되어 새롭게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마흔이 넘었는데, 사십대 소녀, 가당 키나 할까?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