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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 Jun 26. 2021

불편해질 용기

쿠팡로켓배송멤버십 해지 후기

오늘 로켓와우 멤버십을 해지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실 물을 시키면서 정기배송을 할지 말지를 고민했었는데 이젠 의미 없는 일이다. 나는 자취를 시작하며 로켓와우 멤버십에 가입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싼 가격에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애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물건을 주문할 때마다 배송이 빨라서 흡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월 정액료가 고작 2900원이다. 매달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으로 빠져나가는 돈에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오늘부터는 더 이상 나와 관계없는 서비스다.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서비스는 2900원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것들이었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부터 각종 할인 혜택에 최근엔 OTT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쿠팡은 널리 알려져 있듯 매년 적자가 나고 있는 기업이다. 적자 폭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성장성이 큰 기업이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몇 천억 많게는 몇 조씩 나는 적자를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허리띠를 졸라 맨 듯하다. 좋게 말해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이지 노동자를 갈아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근거는 매년 쿠팡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쿠팡의 문제적 행보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앞서 말한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있고, 대규모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도 많다. 백번 양보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쿠팡은 사고 대처나 이후 태도는 최악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너무나 부실하다. 여전히 직원 대다수를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채우고 그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계속해서 쓰러진다. 그리고 이번엔 대형 화재까지 발생했다. 굳이 예시를 다른 예시를 더 가져오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사고들만 봐도 이 대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에 얼마나 무신경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쿠팡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에 굉장히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한 방송사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건을 다루자 해당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게 아닌 기자 개인에게 했다. 그나마 일반적인 것이 방송사나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하는 것인데, 기자 개인에게 이러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쿠팡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 이렇게(?) 된다는 식의 협박인 셈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알쓸범잡을 보다가 알게 된 법칙인데, 여기서 1:29:30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뜻을 풀이하면 한 번의 대형사고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전에는 300번의 아주 사소한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쿠팡에게도 적용된다. 쿠팡 노조에 따르면 이번 화재가 발생 전 현장 노동자들은 전기 장치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평소 오작동을 이유로 스프링클러를 꺼두었고, 마찬가지로 화재 경고 방송의 오작동도 많아 노동자들이 즉각 대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구조활동 중 안타까운 희생자까지 나왔다. 이 모든 사고를 과연 쿠팡은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들에 더 예민하게 생각했더라면, 혹은 작은 방심들이 모여 대형 참사를 불러온 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적당한 해프닝으로 끝날 사고일 수도 있었다. 이번 사고 뒤에 쿠팡이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사고가 난 뒤 언제나 그랬듯, 뒤늦은 사과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그들의 입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긴다. 이 익숙하고도 지독한 반복이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쿠팡에서 이런 전조 현상은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은폐되고 왜곡됐을 사고까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을 하기 위해 쿠팡 멤버십을 해지했다. 자취를 하는 입장에선 분명 전보다 번거롭고 불편한 상황이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불편해지기로 했다. 평소 극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나름 중대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결정이 더 뿌듯하기도 하다. 고작 2900원짜리 고객이지만 이 2900원짜리 날갯짓이 2900억 원짜리 날갯짓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멤버십을 해지하면 곧바로 2900원을 환불해준다. 이 돈을 받는데 기분이 더럽다. 이왕 줄 거 지금까지 냈던 돈 전액 환불해주던지. 받으면 안 될 돈 받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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