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로켓배송멤버십 해지 후기
오늘 로켓와우 멤버십을 해지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실 물을 시키면서 정기배송을 할지 말지를 고민했었는데 이젠 의미 없는 일이다. 나는 자취를 시작하며 로켓와우 멤버십에 가입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싼 가격에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애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물건을 주문할 때마다 배송이 빨라서 흡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월 정액료가 고작 2900원이다. 매달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으로 빠져나가는 돈에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오늘부터는 더 이상 나와 관계없는 서비스다.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서비스는 2900원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것들이었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부터 각종 할인 혜택에 최근엔 OTT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쿠팡은 널리 알려져 있듯 매년 적자가 나고 있는 기업이다. 적자 폭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성장성이 큰 기업이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몇 천억 많게는 몇 조씩 나는 적자를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허리띠를 졸라 맨 듯하다. 좋게 말해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이지 노동자를 갈아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근거는 매년 쿠팡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쿠팡의 문제적 행보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앞서 말한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있고, 대규모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도 많다. 백번 양보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쿠팡은 사고 대처나 이후 태도는 최악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너무나 부실하다. 여전히 직원 대다수를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채우고 그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계속해서 쓰러진다. 그리고 이번엔 대형 화재까지 발생했다. 굳이 예시를 다른 예시를 더 가져오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사고들만 봐도 이 대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에 얼마나 무신경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쿠팡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에 굉장히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한 방송사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건을 다루자 해당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게 아닌 기자 개인에게 했다. 그나마 일반적인 것이 방송사나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하는 것인데, 기자 개인에게 이러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쿠팡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 이렇게(?) 된다는 식의 협박인 셈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알쓸범잡을 보다가 알게 된 법칙인데, 여기서 1:29:30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뜻을 풀이하면 한 번의 대형사고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전에는 300번의 아주 사소한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쿠팡에게도 적용된다. 쿠팡 노조에 따르면 이번 화재가 발생 전 현장 노동자들은 전기 장치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평소 오작동을 이유로 스프링클러를 꺼두었고, 마찬가지로 화재 경고 방송의 오작동도 많아 노동자들이 즉각 대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구조활동 중 안타까운 희생자까지 나왔다. 이 모든 사고를 과연 쿠팡은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들에 더 예민하게 생각했더라면, 혹은 작은 방심들이 모여 대형 참사를 불러온 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적당한 해프닝으로 끝날 사고일 수도 있었다. 이번 사고 뒤에 쿠팡이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사고가 난 뒤 언제나 그랬듯, 뒤늦은 사과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그들의 입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긴다. 이 익숙하고도 지독한 반복이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쿠팡에서 이런 전조 현상은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은폐되고 왜곡됐을 사고까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을 하기 위해 쿠팡 멤버십을 해지했다. 자취를 하는 입장에선 분명 전보다 번거롭고 불편한 상황이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불편해지기로 했다. 평소 극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나름 중대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결정이 더 뿌듯하기도 하다. 고작 2900원짜리 고객이지만 이 2900원짜리 날갯짓이 2900억 원짜리 날갯짓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멤버십을 해지하면 곧바로 2900원을 환불해준다. 이 돈을 받는데 기분이 더럽다. 이왕 줄 거 지금까지 냈던 돈 전액 환불해주던지. 받으면 안 될 돈 받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으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