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 않는 편이다. 뭐, 점잖을 떤다거나 거창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귀찮은 게으름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마냥 게으름으로 일축할 수는 없는 것이, 횡단보도의 신호가 깜빡일 때도 걸음을 느긋이 할 수 있으려면 집을 나서는 시간에는 오히려 여유를 두어야 한다. 그렇게 게으른 것인지, 부지런한 것인지 구별이 어려운 채로 나는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느릿느릿하다는 것은 어딘지 특별하다. 주변을 살피고 하늘을 바라본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천천히는 아니지만, 또 땅만 바라보고 기운이 쪽 빠진 터덜터덜도 아니다. 그저 눈치 볼 필요 없이 여유 있게, 느긋한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출근길에 가장 다채롭고 풍성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담는다. 하루를 살리는 생각들. 사실 이렇게 나의 느긋한 발걸음을 깨달은 것도, 이것이 좋은 일인 양 자랑스레 말하게 된 것도 오늘 아침부터다.
나는 평소와 같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다만 느긋한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도 역시나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편하게 걸으면 십오분 정도 걸리는데, 급한 일이 있어 뛰는 사람은 오 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자그만 굴다리가 하나 있다. 얼마나 자그마한지 인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꽤 비좁아질 정도다. 그래서 통행량이 많아지는 출근 시간대에는 마치 에스컬레이터의 규칙처럼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오른편으로 가고, 급한 사람들은 왼편에서 빠르게 걷는다.
에스컬레이터도 웬만하면 오른편에만 서 있는 나는 당연히 오른편을 따라 차근히 걷는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걷다가 문득 앞서 걷는 이가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내가 감각함과 동시에 그도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그의 걸음걸이에 별반 변화는 없다.
충분히 느긋이 걷는데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앞사람을 보자 마음속에 갈등이 인다. 빠르게 걸어서 저자를 앞지른 후에 다시 나의 속도를 유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걸음을 늦추어 저자의 보폭에 맞춰 걸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고민은 잠시간이었고, 나는 금세 걸음을 늦추었다.
뒤편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지, 두어 명이 나와 앞쪽의 그를 잽싸게 지나쳐 다시 줄을 선다. 나도 저랬어야 했나, 잠시 생각.
발걸음을 조금 더 늦추어야 할까, 지금의 속도가 좋을까 고민하며 앞사람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저런 느린 걸음이라면 출근길은 아닌 건가? 지금이 벌써 여덟 시 반에 가까웠으니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출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로 향하는 길일까? 학교? 도서관? 잘 모르겠다. 보통은 일정에 맞추어 평소보다 빠르게 걷게 되는 아침 시간에 이렇게 느리게 걷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쩌면 나는 그 느릿한 걸음에 기운이 없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분주하게 굴 일이 없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가기 싫은 곳으로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 발걸음을 넘어서 휭 지나가 버리는 것이 혹시나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지 몰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라면,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다면 분명 어지간히 기운이 빠진 상태일 텐데. 그럴 땐 왠지 마음도 함께 꼬여서는 보란 듯이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보며 괜한 불안이나 불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반면 뒤에서 ‘너 그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하고 걸음을 늦추어 준다면, 진짜로 이만큼의 속도도 괜찮은 것 같아 위로가 될지도 모르지.
혼자서 소설을 한 편 썼대도 별 할 말은 없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혹여 그랬다면.
굴다리를 빠져나오고서야 자연스레 본래의 보폭으로 돌아가 앞으로 나아간다. 넓은 길에서는 앞지른다기보다는 그저 스쳐가는 행인에 불과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