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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an 21. 2024

마흔여섯, 인턴입니다만...

시작하기 전.

바람이 불었다. 막 내일이면 시작되는 설 연휴 때문인지 교내에는 인적이 없었다. 한참 동안 시간을 들여 교내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학교 정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안도의 마음과 동시에 다시 중단되었던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후회의 마음이 뒤섞인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교차였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나는 4년의 본과 생활이 5년이 될 줄 몰랐고, 국가고시에 떨어질지 죽어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다시 시작할 당시만 해도 너무도 에너지가 넘쳐서 보고서 하나, 수업 시간 한 시간에도 정성을 다 할애하였다. 새벽달을 보고 등교해서 샛별을 보며 하교를 하는 날이 있어도 그것을 불평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피곤함에도 마냥 신이 났고 내가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의 다 그렇게 흘러가지 않듯이 내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간들이 나를 맞았다.

동생의 사고는 내가 일 년이라는 시간을 휴학할 수밖에 없게 하였고, 그 여파로 동기들보다 낮은 학년에서 보낸 나머지 5학기 내내 나는 두문불출하였다. 성적은 늘 바닥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여러 과목을 다 찾아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러다 보니 과목별 편차가 생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이 크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4학년 2학기를 맞이하고 얼마 후, 세상에서 제일 아끼던 내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복 받은 삶이었으니 편히 자기의 세상으로 돌아갔다고 말했지만,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 여파였던가 나는 그 해 국시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결과 앞에서 당당했다. 다만, 세상을 떠난 녀석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나는 마흔여섯에 이제 "인턴"(딱히 일할 곳을 찾지 못했지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세상의 한가운데로 다시 뛰어들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한 없이 늦은 인생의 리스타트 앞에서 나처럼 새로운 것을 위해서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정규교육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한 분들, 혹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과 맞는 일인가 한없이 고민하며 꿈을 그리는 분들 등, 내가 겪었던 시간들과 비슷한 시간과 내가 했던 고민과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한 번쯤 편하게 읽어보기 바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글은 그런 내 마음을 담은 글들이다.

나는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져왔고, 그래서 늘 세상에서 한쪽에 치우쳐져 있던 사람이다. 나는 나같이 세상의 한쪽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세상의 한가운데로 나갈 수 있다,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수리영역 8점짜리 고교생이 이제 막 수의사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세상에 떠떴이 나서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도 내게는 그 일이 어렵다. 아닌 척하지만 현재도 늘 주눅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내 주변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에서 온 나 스스로의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이들은 나와 같은 시간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세상은 당신들에게 열려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이가 많아도 괜찮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 세상을 향한 뜨거운 가슴만 있으면 충분히 세상을 향해 다시 뛰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제, 나는 마흔여섯이 되었다.

마흔여섯의 인턴(비록 일 할 병원도 찾지 못했지만)은 이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준비를 하고 있다.

내 글을 읽는 당신들도 다시 세상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가.

그럼 이제 우리 세상을 향해 뛰기 위해 한가득 심호흡을 해보자.


당신이 다시 날아오를 날은 그리 멀지 않기를 바라며


2024년 1월 21일


Written by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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