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윤 Feb 01. 2024

국가고시 5일 전

다큐멘터리 5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5일간의 사적인 기록이 밖으로 흘러나와서는 안 되는 나름의 비밀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글은 어느 순간 슥하고 지워질 것이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는데, 국가고시 5일 전의 기간 동안을 다큐 3일처럼 만들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한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엉뚱한 구석이 있는 인간이라서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기에 공부하는 도중에 문득 그 5일을 내 공간에 한 번 올려야 되겠다며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럼 시작해보려고 한다.




국가고시 약 5일 전에 전국의 수의학과 4학년 생 및 재주생 등등은 서울의 "W호텔"에 모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험을 보는 날까지 합숙을 하며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보통 시험은 1월 셋째 주 금요일에 보니까 우리가 합숙을 하러 모이는 날은 그 주의 일요일이 되겠다. 


합숙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자유이나,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대절버스를 이용한다. 시험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운전 스트레스로 혼이 나가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대절버스에 몸을 싣고 나면 학장님 및 부학장님께서 버스에 올라오셔서 한 마디씩 하신다. 말은 다 똑같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한 번 불합격한 전례가 있다. 이 것이 합격률 97%의 국가고시가 외면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지만, 사실 살짝 방심하면 떨어지는 것이 또 이 시험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7월부터 하루에 평균 7시간 정도를 공부했다. 많이 하는 날은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책상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틴 날도 있다. 반려견 유키가 죽은 이 후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서 허송세월 보낸 재작년과 작년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여하튼 버스는 학교 별 호텔 입실 시간에 맞춰 우리를 태워 나른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전투에 끌려나가는 총 쏘는 법도 모르는 초짜 병사처럼 긴장을 하면서 이동한다. 물론, 나는 아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의 이동으로 우리는 서울의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간단하다. 각 대학교의 졸업시험을 비롯한 시험들 중에서 중요하다 싶은 문제들을 간추린 일명 "호자, 호텔자료, 호두과자"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호두과자를 까서 일요일부터 목요일 밤까지 계속 먹는 것이 바로 일과다.


일요일은 비교적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왜냐하면 호두과자가 밤에 한 차례만 나오기 때문인데, 사실 그전부터 각개전투는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호텔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정리했던 오답노트를 두어 번 반복하며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에 있을 자료 배부에 앞서 내가 부족한 과목을 체크해 놨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과목대로 볼 시간이 없다. 엉키고 엉켜서 이 문제가 저 과목의 답에 가있고, 저 문제의 답이 이 문제의 답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첫날의 식사는 여유롭다. 식사는 보통 7~8시/ 12~2시/ 5시~6시 반 사이에 먹는데, 시험 때문에 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갈 것 같지 않지만, 웬걸 살아있는 동물은 어쩔 수 없는지 목구멍으로 잘만 처묵처묵 넘어간다. 실제로 나는 살이 빠졌어야 하는 합숙기간 동안 얼마나 잘 처먹었는지 오히려 체중이 늘어서 왔다. 이렇게 식사가 끝나면 호두과자가 배부된다.




호두과자를 보는 것의 주요점은 신속, 정확이다. 빠르게 문제를 보고 답을 외우고 그리고 넘어간다. 그리고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한 번 본 그 문제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호두과자가 따스할 때 얼른 까서 입에 넣고 먹어버린 다음 홀가분하게 다음 과자를 까먹어야만 된다. 그렇지 않고 미뤄두면 호두과자도 식고 맛도 없으며 나중에는 호두과자가 엄청나게 쌓여버린다. 가장 최악의 순간이다.


형광펜으로 쭉쭉 그어가며 문제를 읽고 답을 읽는다. 이 문제가 시험에 나올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다. 당연히 안 나올 가능성이 백배, 천배 많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한다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다.


각 식사 후 나오는 호두과자를, 그날 나온 호두과자를 다 까먹어야만 그 다음날 무리가 없다. 만약 그것이 안 되면 호두과자의 의미가 없어진다. 오전, 오후, 저녁, 밤 할 것 없이 가끔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온다. 나는 그럴 때 "레드불"을 마셨다.


내가 마셨던 일부 에너지 드링크


몇 캔을 마셨느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마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멍해져도 눈은 떠져있으니까, 그것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다. 때로는 쓰기도 하지만.





눈이 내리던 날 창 밖으로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내 머릿속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은 뿌옇고, 가운데는 텅 빈듯한 뇌상태. 이런 뇌상태를 가지고 월, 화, 수, 목요일 저녁까지 버틴다.


그래도 밥은 맛있다. 이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것 먹으러 내가 여기 깎지 왔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밥이 꾸역꾸역 들어간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로 여겨졌다. 머릿속에서 필요한 당분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적어도 공부는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그렇게 목요일 밤이 되면 우리는 그동안 배부 되었던 호두과자 상자의 껍데기를 문 밖에 내놓고 시험을 보러 갈 준비를 한다. 금요일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기에, 목요일에는 일찍 자야 하지만 일찍 잠이 오면 그게 인간인가, 싶지만 역시 난 잘 잤다.




수험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마지막 자료 정리를 보았다. 시험장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시간 동안 마지막으로 본 자료에서 나는 쾌거를 거두웠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험은 작년처럼 어려웠다. 물론, 내 입장에서 말이다. 총점수의 60%를 획득하고 각 과목별 40%의 과락을 넘기면 되는 시험이지만 총 20개 과목으로 되어있는 이 시험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시험이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한 번 체크하고 넘어간 다음에는 다시 돌아와서 검토하지 못했다. 그냥 넘어가는 것에 급급 했을 따름이다. 그렇게 오전이 끝나면 넘어가지도 않는 얼어서 밥알이 얼음 같은 도시락을 혀로 굴려가며 먹는다. 여기저기서 나와 다른 답들이 언급될 때면 가슴은 더 철렁 내려앉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로 돌아올 때는 한결 무거운 마음이다. 가벼워졌어야 하는 마음은 두 배의 곱절이 되어서 머리까지 내려앉게 만든다. 어지러움은 덤이다. 자신들은 몇 개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로 단련된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나와는 먼가 가 달라도 다르다. 나는 아무리 채점을 해봐도 60%를 넘을 자신이 없다. 




다시 학교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의 심정은 처참하다. 앞에서는 같이 시험 본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와 다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 이래서 사람은 되도록 좋은 무리에 어울려야 한다. 그것은 진실이다. 만약, 누군가 내게 어떤 인생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면 "당신이 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 중 가장 바람직하고 좋은 커뮤니티에 속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학교에 도착하면 부모님까지 오신 친구들부터 해서 왁자지껄하다. 반면 나는 조용하다. 내 캐리어를 찾아서 주차된 내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발표날까지 하느님 아버지를 반복해서 말하면서 기도를 하고 지낸다. 


호텔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뭔가 상실된 느낌이었다. 호두과자도 맛도 없었고, 뜨끈한 것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렇다가 낙방을 해서 뜨거운 눈물 한 바가지를 먹었다. 올 해도 호텔에 들어갈 때, "죽어도 이 일은 두 번 다시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호텔에 가서 있어보면 이런 말이 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은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커질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다. 호텔에 있는 5일 동안 나는 나 스스로 열심히 공부를 했던가를 계속해서 되뇌어보았다. 아주 작은 빈틈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꽤 많은 순간들을 허송세월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은 사람을 한결 노곤 하게 만들어주는 단어이다.


합격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다시 한번 5일 동안, 호텔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나처럼 올해 낙방한 친구들에게도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이 또 한 해 잘 이겨나가면 내년에는 좋은 소식들이 그들을 기다리리라.


2024년의 호텔생활은 내게 다행히 "합격"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줬다. 호텔의 추억은 영원하리라.


2024년 2월 1일


Written By HAR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