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의 넘치는 교육열의 시작, 그 잘못된 계기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할 줄 아는 것이라는, 먹고 자고 싸고 가끔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뱉는 것뿐이다. 그 웅얼거리는 소리가 의사소통의 첫걸음이자 바탕이다. 그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엄마"라고 했다거니 "아빠"라고 했다거니라며 다투는 일은 어쩔 때는 답이 없어 보인다. 전 세계의 언어를 놓고 볼 때 얼마나 많은 언어의 "엄마, 아빠"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가들은 어떻게 각자 또렷하게 그 나라말의 "엄마, 아빠"를 발음했을 것인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가들의 뇌가 아가를 지나서 유아기를 지나 약 7~8세의 어린이에 도달할 때까지의 인간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는 것은 확실한다. 이때 놀랍게도 수많은 수의 단어 및 말을 배우고 연산체게가 머릿속에 자리 잡히게 되며, 그리고도 남는 아이들에게는 재능 교육을 해도 그 교육이 날아가지 않고 아이들의 뇌 한 구석에 자리 잡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단, 이렇게 재능 교육을 하는 것에 비해 나중에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아이들이 적은 것을 보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예측할 뿐이다.
내가 자라던 시기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교육열이 대단하지 않았다. 국민학교(국민학교세대기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만 제대로 배워도 "굿"인 시대였기에, 그리고 심지어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한글을 못 깨치고 온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나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남들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숙달하는 속도가 빨랐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고향의 다른 마음에 사시던 큰 이모님 댁에 마실을 간 적이 있는데, 손님으로 온 할머니가 손자 자랑을 그렇게 하는데, 그 이유가 구구단을 그렇게 잘 외운다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글도 다 못 배운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구구단을 외운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나도 호기심이 일었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아이는 할머니가 시키면 시킬 때마다 2단부터 계속 반복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내가 "사오??"(가령의 숫자다.)라고 친구에게 물었고, 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친구는 그 리듬에 따라 숫자를 붙여서 외운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세상에 까발린 나쁜 놈이 되었다.
이제는 내 차례를 증명할 차례가 되었다. 우습게도 어른들은 이런 일에 꼭 목숨을 건다. 나는 그래서 음에 숫자를 붙이지 않고, 하나하나 다 외워나갔다. 그리고 곱하기는 더하기를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구구단을 다 외워버렸다. 거기에 음만 붙이는 것은 너무 쉬웠고.
곱하기의 본질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오육??"이라던가 "칠팔??"이라든가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문 교육도 시켰다.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게 그 나이에 왜 필요한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꾸역꾸역 잘해나갔다. 시켜서 안 한 것은 없다. 뭐든지 꾸역꾸역 해댔다.
이런 꾸역꾸역 식의 해냄의 식은 나의 부모로 하여금 내가 영재는 아닌가...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물론, 국민학교에 입학해서도 1등을 거의 놓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국민학교 때는 국민학교 학생이 배워야 하는 지식의 대부분의 기초 원리를 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영어는 없었고(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기대는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국민학교 때 쌓아봤어야 할 추억이나 기억이 거의 없이 그 시절 늦는 밤시간까지 이 학원, 저 학원에 매달린 채 비교하자면 현대 대치동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키워졌다. 점점 어려운 문제를 풀게 되었고. 가족들이 자는 시간에 나 혼자 깬 채로 어려운 수학문제를 푼다거나 이런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물론, 1등 뒤에 따라오는 포상이라거나 상에 대한 쾌감은 어렸을 적이라도 적게 작용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끝내는 어떤 커다란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중학교에서 첫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내 인생에 있어서 쓰라린 첫 패배의 시작이었으며 계속해서 이어질 내 인생의 빙하기를 알리는 경종이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훌륭하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빠르다. 만약 세르비아어를 공부를 시켜도 빠르게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 시절에 아이의 흥미를 잘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 내린 결론을 아이의 교육과 연계시킨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 때는 수학을 잘하던 아이가 중 교등학교생으로 되어갈수록 점차 수학 성적이 떨어지고 그 학문에 재미를 못 느끼는 이유를 알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좋은 선생님과 공부를 해도 그 아이의 성적은 쉬이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가 정한 영재론에 기대어 영재 프로그램의 성과인 듯 나온 아이가 영재가 아니라면 아이를 미워하실 것인지.
아이는 뛰어난 흡입력을 갖고 있고 똑똑지만, 그 분야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그것을 이해할 때 아이의 교육은 비로소 성공적으로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2월 8일
커버이미지 동아사이언스
Written by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