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말레이시아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9개월을 채워가고 있다.
-나 9개월 동안 뭐 했지?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하는 무엇이든 다 마음에 들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내게 더 편안한 쪽으로 합리화를 하며 지금 이 순간이 그저 만족스러울 때. 반면 이런 순간도 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뜻대로 잘 안 되는 것 같고 안 좋은 면들만 보이고 지금 이 순간이 불만족스러울 때.
요 며칠 나는 후자에 가까운 시간들을 보냈다. 2월이 끝나가고 2024년도 벌써 아주 초반이 아닌 3월에 들어서면서 내가 여기에 온 지도 9개월이 되어가고 있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분명 많은 것들을 했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고 성장이 있었는데,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해서 순식간에 아예 정반대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허무함을 느끼는 데에는 당연히 분명한 이유도 있긴 할 것이다. 요 근래 내 영어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 회사일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면서 또 그렇다고 아주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도 않은 것, 그리고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불확실한 것. 이 모든 고민들을 안은 채 나는 아직 시간의 흐름에 맞게 하루 하루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 않은데 시간은 그런 나에게 맞춰주지 않고 성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두려웠고 지금까지의 시간들마저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 9개월 동안 뭐 했지?
그러나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기분 분명 오래 안 갈 텐데..
기분이 우울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또 동시에 내가 어떤 다른 면을 보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기분이기도 한 걸 이제는 아니까..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내가 보는 대로 펼쳐 보였다.
그래서 빨리 이 기분을 이겨내고 싶었다.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게으름을 즐기기도 했고 요가와 명상을 했다. 최근 새로운 취미로 들인 핸드팬 악기를 마음껏 쳐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는 조금 괜찮아지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그러나 이전보다는 확실히 덜 다운된 상태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스스로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수 있게 나를 보살핀다. 그렇게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 다시 에너지가 생기면 그때는 근본적으로 지금 내가 생각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오늘도 또 나는 나를 보살피고 나를 알아가고 나를 받아들인다. 아직 어렵지만 그런 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