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낭만치사량 초과

2025 여름휴가 #4 여수

by 북믈리에 릴리

놓칠 수 없지.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 들렸다가 여수에 도착했다.

예전처럼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림책과 관련된 곳에 가는 것은 마음이 설렌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순천시립그림책 도서관을 구경하고, 바로 앞 그림책정원에서 그림책도 추천받아 구입했다. <연남천 풀다발>과 <여름,> 이 두 그림책에 여름휴가와 순천의 추억을 담게 되었다.

여수밤바다~�

자꾸만 노래가 떠오르는 여수에 도착했다.

노래에 가스라이팅이 되었는지 뭔가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가게 간판에도 낭만, 낭만이 넘쳤다.


숙소에 도착하자 남편과 아이들 셋은 수영장으로 뛰어갔다. 네 남자의 독차지가 된 수영장에서 물장구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숙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달콤한 휴식이었다.



다음 날은 보성 녹차밭에 갔다. 보성 녹차밭은 20대에 광고로 처음 봤을 때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남편과 나는 경치보다 다른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땅 주인은 누구일까?"

녹차밭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우리가 눈여겨보는 것은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은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우리는 그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예전에 손잡고 올라가야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시간은 우리의 모습을 바꿔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함께 걷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는 점점 더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전망대의 풍경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살던 그 동네의 노을이 떠올랐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손을 잡고 집에 갈 때,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늦은 오후의 끝에 바라보던 그 노을이 떠올랐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종교가 없던 내가 "노을의 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속으로 외치곤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주홍빛 노을은 그때와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상황도 나도 달라져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순신 광장에서 간식을 사 먹고 구경하는데 아이들은 총쏘기 연습장에서 처음으로 눈을 반짝였다. 역시 남자들이구나 싶었다. 총을 겨누는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유일한 군필자로 총 쏴본 아빠가 아이들에게 조준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모습도 흐뭇했다.

우연인지 잠만보 인형을 여러 개 맞췄고(아빠의 별명은 잠만보다)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인심을 쓰신 것인지 커다란 원숭이 인형을 건네주셨다.


국립여수해양기상과학관

여수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박물관이나 과학관 하나는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검색창을 서둘러 열었다. 일부러 미리 얘기하지 않고 근처에 도착해서야 목적지를 알려줬다. 가는 곳이 과학관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 아이들은 금세 신이 났다.

돌아오면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는 멀고 비까지 내렸다. 그 와중에 몇몇 가족들이 4살 5살 어린아이들과 과학관을 향해 오고 있었다. 거기도 엄마의 욕심이 들어갔겠지. 알 것 같은 마음, 미소가 지어졌다.


서울로 오는 긴 시간, 그렇게 여름휴가는 마무리되었다.

아이들과의 추억도 낭만도 가득 채워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