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스타 KM Dec 22. 2022

살림! 쉽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었어

살림의 영역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오래간만에 햇살이 좋다. 오후까지도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상쾌한 하늘이다.

싱가포르는 요즘 매일 비가 내린다. 아침엔 해가 쨍쨍이다 가도 정오를 넘어서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해 오후 2시나 3시경이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다. 그렇잖아도 습기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빨래를 말리는 것이 쉽지 않다. 때에 따라 건조기를 돌리기도 하지만 나는 햇살에 빨래를 말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오늘은 햇살까지 받쳐주는 날이니 아침에 일어나 액상 세제 한 스푼을 넣고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세탁기 안에 빨래통은 놀이공원의 놀이기구처럼 잘 돌아간다. 난 세탁기 통을 볼 때마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다람쥐통 놀이기구가 생각난다. 반원을 그리다가 원을 그리며 휘익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 세탁기 안의 빨래통은 잘도 돌아간다.


삑!

세탁이 다 되었다는 소리가 나서 세탁기를 열고 빨래를 꺼내는 순간


헐~

내가 직감하는 그것이 맞나 싶어 빨래를 한 뭉치 꺼내는데 ‘우수수’하고 떨어지는 그것은 나의 생각이 두뇌로 가서 판단하기도 전에 눈으로 먼저 확인시켜 줬다.


휴지!!!

바지 안에 있던 휴지가 빨래와 함께 돌아가서 모든 옷에 깨알처럼 휴지가 달라붙었다. 빨래를 꺼내자 어떤 휴지는 미처 다 풀어지지도 못한 채 덩어리채로 뭉쳐져 나왔다. 순간 화가 나면서 범인이 누군지 내가 짐작하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확인은 너무 빨리 끝났다. 왜냐면 세 명의 옷 중에서 바지를 입은 사람은 쏭이(아들의 애칭) 한 명뿐이었다.

우리 식구는 빨래를 세탁기 안에 직접 넣는다. 넣기 전에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빼고 넣으라고 아이들에게 여러 번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종종 세탁이 다 돼서 빨래를 꺼낼 때 축축이 젖은 2달러 지폐, 동전, 학교에서 메모한 쪽지, 심지어는 연필이 같이 나온 적이 있다. 거의 모두 쏭이가 한 것이었다.

(사실, 쏭이때문에 안 것이지만 싱가포르 2달러 지폐는 30도 물로 3시간가량 세탁을 해도 돈이 상하지 않았다)

나는 쏭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줬기 때문에 정신교육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나 다녀왔어.”

학원을 갔다 집에 돌아온 쏭이는 나를 향해 얘기하다가 그 옆에 널브러져 있는 빨래들을 보았다.

“옷 갈아입고 씻은 후 식탁에 앉아.”

쏭이는 군말을 하지 않고 씻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너는 오늘 네가 청소를 다하면 돼. 저기 봐”

휴지가 붙어져 있는 빨래들을 가리키는 내 눈빛은 레이저라도 뿜어낼 듯했다.

“엄마, 내가 감기 때문에 콧물이 나와서 휴지를 가지고 다녀서 그래.”   

나름 쏭이는 자기의 상황을 어필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슨 상관. 빨래통에 넣을 때 주머니 확인하라고 했잖아.”

“주머니 확인했는데 그게 왜 거기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

“응 그래? 모르겠으면 모든 청소를 하면 돼. 일단 점심 먹고, 옷에 붙은 휴지를 다 떼. 그리고 청소기로 집안을 싹 다 밀고, 걸레를 줄 테니 위의 먼지를 다 제거하고 난 후 바닥을 다 닦으면 돼.”

“엄마, 내가 옷에 붙은 거 다 떼고 청소할 건데 나 전에 비해서 정말 안 그러잖아. 안 그러다가 실수한 거야.”

“알았어. 실수라도 네가 한 거니까 네가 수습하면 돼.”

나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얘기를 했는데 쏭이가 계속 내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너 왜 안 하니?”

나는 의문반 강요반 물었다. 그랬더니 쏭이가

“엄마가 점심 먹은 후라고 했잖아.”

하면서 식탁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겸사겸사 점심을 먹으려 하였다.

“점심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려. 그러니까 그때까지 휴지 떼어내고 있으면 돼.”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태평한 쏭이 모습이 웃기기도 어이가 없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쏭이는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그것을 떼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선택한 옷은 색깔 있는 옷이었다.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옷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이 반만 맞았다. 색상에 따라 휴지가 잘 보이긴 했지만 원단이 휴지를 떼어내기 어려운 재질이었다. 한쪽 앞 면을 떼는데 20분 정도가 소요될 정도로 그의 행동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쏭이에게 스카치테잎이 돌돌 말려있는 형태의 먼지 떼어내는 돌돌이를 툭 던져줬다.

“앗싸, 도구의 문명.”

그러고는 그는 신나게 그것으로 티셔츠 앞 판을 밀어대고 그 뒤 뒷 판도 밀어댔다.

그렇게 3벌 정도 끝냈는데 움직임이 안 느껴져서 옆을 보니 쏭이가 졸고 있는 게 아닌가!

“쏭 뭐해?”

쏭이가 졸다가 깜짝 놀라더니

“엄마 졸려서….”

점심식사 후 햇살 뜨거운 창가에 앉아 단순노동을 하고 있으려니 잠이 찾아왔나 보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귀엽기도 했지만 나는 단호함을 잃지 않았다. 이번엔 좀 확실히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집안의 살림 즉 가사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얼른 하고 청소해.”

그 후 쏭이는 3시간에 걸쳐 모든 집안 청소를 마쳤다.




나는 쏭이에게 살림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네가 생각하는 집안일에는 무엇이 있니?”

“청소, 빨래, 요리 또 모르겠는데….”

엄마가 생각하는 살림의 영역은 여섯 가지가 있어. 육아, 남편 내조, , 빨래, 정리정돈, 청소

“엄마 설거지는?”

“설거지는 요리하고 난 다음 해야 하니까 요리랑 묶어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엄마 그럼 아이 가르치는 것은?”

“육아는 애들을 기르고 가르칠 수도 있으니 교육 육아라고 생각하면 되고. 엄마가 생각하는 살림의 영역인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쏭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의하는 듯했다.

“요즘 시대에는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다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 일을 하잖아. 그런 상태로 결혼을 하기 때문에 가사는 분담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 그러려면 전업주부가 하는 일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일의 강도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아야 해. 무엇보다 일을 하기 전에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려면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고. 아까처럼 사고 치면 일이 더 늘어난단 말이야.”

"알지. 엄마. 집안일이 얼마나 많고 힘든데."

쏭이는 알겠다고 얘기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육아, 남편 내조, 요리, 빨래, 정리정돈, 청소

내가 생각하고 말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영역이었다.

직장으로 말하면 6개의 업무를 매일 한다는 말이다.

육아는 매번 업그레이드된 고난도 과제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남편 내조는 직장동료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하는 것과 같다. ‘오늘은 뭐 먹지’ 생각하는 것은 업무 처리를 위해 새로운 생각을 내야 하는 것과 같고, 빨래 청소는 출퇴근 같은 거여서 해도 티 안나지만 안 하면  티가 팍 나는 그런 것 같다.

그것은 생각보다 다른  영역들이 조합이었다. 그래서 살림을 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건가 보다. 누구나 하지만 누군가에겐 더 어려운 게 이유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유전자를 물려주셨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