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우리 집에 울려 퍼지는 소리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들으면 그 옛날 다듬이질 소리를 연상하실 거다.
“여보 거기 말고 오른쪽”
“여기?”
“어, 거기 좀 아래. 그래 거기 맞아. 좀 세게.”
우리 집에 매일 밤 오고 가는 남편과 나의 대화다. 누군가 들으면 로맨틱한 밤을 위한 대화인가 생각할 거다.
이 모든 소리와 대화는 22년째 남편이 나의 종아리를 주무르는 소리이다.
2001년 12월 우리는 불같은 3년의 연애를 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첫 아이는 결혼하자마자 찾아왔다. 임신과 함께 바로 찾아온 입덧으로 매일 오바이트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근을 했다. 교사의 직업 특성상 아이의 태교는 저절로 됐지만 문제는 다리가 저리고 힘든 것이었다. 서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리가 천근만근이었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는 금세 구역질로 반응했다. 뱃속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24시간 울렁거리는 것이 몸을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제대로 먹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나에게 얘기했었다.
“다리를 좀 주물러 줄 테니까 잠 좀 자봐. 내일 출근하려면 자야 할 텐데. 어서 엎드려봐.”
나는 그의 말에 그가 다리를 주무르기 좋은 자세로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남편은 나의 부은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의 마사지를 받으며 잠이 들었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마사지!
마사지는 매직이었다. 하루종일 힘든 피로를 잠으로 잊게 만들어주는 마술이었다.
어느덧 임신 8개월 차가 되어 입덧이 가라앉았다. 그때부터는 잘 먹을 수 있었고, 잘 먹으니 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리는 더 탱탱하게 부었다. 그래서 8개월이 지나도 마사지는 계속 받았어야 했다.
계절은 봄을 지나 한여름으로 향했다.
나의 전용 마사지사인 남편은 연중무휴였다. 그의 마사지는 시작하면 1시간은 기본이었다. 좋아하는 방송을 틀어놓고 보면서 주물렀다. 1시간 코스가 기본이었으나 내가 잠이 들지 못하면 2시간 코스로 들어가야 했다.
“오늘은 자기가 빨리 잠들었으면 좋겠네. 요즘은 자기 다리 주무르고 나면 팬티까지 땀으로 다 젖어.”
어느 날, 그는 마사지를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몸이 힘든 탓에 남편의 힘듦을 마음 한 부분으로 밀어 놓았었는데 그 말에 나는 남편의 고생스러움이 확 느껴졌다.
그래서 그다음 날, 퇴근한 후에 저녁식사를 하며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자기야, 종아리 주물러 주는 기계 살까 봐. 그동안 그거 산다는 생각을 못했네. 그거 샀으면 자기 덜 힘들었을 텐데.”
나는 말로 표현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걸 뭐 하러 사. 내가 자기 다리 주물러 주면 되는데. 이젠 자기 다리를 매일 주무르다 보니 습관이 돼서 나도 자기 다리를 주물러 주고 나야 잘 수 있어. 임신해서 자기가 얼마나 힘든데 내가 이 정도도 못하겠어. 괜찮아.”
그는 그렇게 나의 마음을 찡하게 감동시켜 놓고, 그의 경력을 이어갔다.
드디어 출산을 했고, 나는 더 이상 다리가 붓지도 임신 때문에 잠을 못 잘 일도 없었지만 내가 그에게 마사지를 받을 이유는 충분하게 계속 생겼다. 출산을 하고 젖몸살로 밤과 낮을 잊을 정도였던 고통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때 그의 마사지는 또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아이가 밤에 자지 않아 내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을 때 나의 피로는 그나마 남편의 손 끝에서 풀렸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5년이 지나고 큰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고, 둘째도 학생이 되었다. 그는 한 사람의 전담 마사지사라고 하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다리의 상태에 따라 나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으며, 각종 기술을 선보이며 다리의 피로를 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단 시간에 풀어주기로 했다. 그야말로 손 끝에서 나오는 마법이었다.
2017년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밤인 줄 알았는데
쿵!
돌 같은 큰 물체가 떨어지는 굉음이 났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는데 그가 안방에서 거실로 나가려던 문 앞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키가 188cm이나 되는 장신이 나무처럼 빳빳해져서 쓰러져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 공포스러웠다.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자기야 소리 들려? 눈 좀 떠 봐.”
목이 메인 떨리는 목소리와 격앙된 목소리였다. 1초가 1분 같다는 말이 이때 하는 말이었다.
자고 있는 큰 딸아이를 불렀다.
“ 빨리 응급차 불러. 응급차. 빨리빨리...”
“엄마~ 왜 그….래…”
딸아이는 자다 나와 광경을 보고 너무 놀랐지만 나보다 침착했다. 아이가 몇 통의 전화를 했다.
차가 오기 5분 정도 사이에 남편은 눈을 뜰 수 있었다.
“괜…찮…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입모양이었는데 나는 분명히 괜찮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그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있었다.
물을 찾는 그를 위해서 딸아이가 물을 떠 왔고, 그의 얼굴을 손으로 받쳐 나는 그의 입에 물을 대 주었다.
차가 도착했고, 나는 차에 같이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고 나니 조금 전보다는 안심이 되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경험했다. 그런 급박한 순간에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를 경험했다.
‘만약에 남편이 잘못된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과연 나는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과 동시에 남편이 그동안 나에게 잘해줬던 일들이 생각났고, 나의 종아리를 지금껏 평생 책임져준 것이 생각이 나면서 나에게 안 좋은 상황이 와도 나는 그에게 평생 갚으면서 살겠다는 생각과 함께 각오를 했었다.
남편은 응급실로 가는 차 안에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괜찮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금방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조치를 끝내고 나니 남편은 점점 괜찮아졌다. 남편의 상태를 위해서 하루는 입원해서 경과를 두고 봐야 하기에 나는 새벽 응급실을 나섰다.
후덥지근한 새벽바람이 차게 느껴졌었다. 나는 눈물로 새벽을 열었고, 기도로 그의 회복을 절실히 또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문을 여는데 그가 침대에 반쯤 상체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있었다.
“자기 어…때.. 괜…찮아?”
나는 또다시 눈물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고
“괜찮아.”
이번에는 정말 또렷하게 괜찮다고 그가 말했고, 나는 그 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그 후 남편은 천만다행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의사의 말을 들으니 큰 일 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황들을 피해 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2023년 현재 마사지 경력 22년 차!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남자!
아내의 종아리를 마사지하며 매일매일 본인의 기록을 깨는 중이다.
그는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가정에서도 아내에게 인정받는 전담 마사지사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