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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18. 2020

미안해 남편.

* Day 21 / 20201014 수요일

@Dunedin, Lakeside Domain Campsite


더니든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오늘 엉덩이 뻐근할 정도로 차에서 이동했다. 내일은 넬슨으로 다시 돌아간다. 맡겨 둔 짐을 찾아가야 하고, 이웃들에게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인사를 드리고 가기 위해서. 그래서 어느 정도 위로 올라와야 했던 우리는 무료 캠프장이 있는(정말 몇 안된다) 크라이스트처치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 어제 백팩커스에서 깨끗하게 단장했으니 이제 다시 이틀은 화장실만 있는 곳에서 묵어도 괜찮다!


오늘은 괜히 심통이 났다. 더니든을 떠나기 전에 오빠는 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언덕에 가보자고 해서 갔다. 사실 나는 이런 곳에 왜 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곳은 기네스에 오른 곳이고 많은 친구들이 방문해서 찍은 사진을 보았던지라 오고 싶어 하는 오빠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동네였던 그곳에서 내가 무서워하는 고양이가 한 두 마리씩 나오고 느닷없이 소낙비까지 내렸다. 점점 예민해지던 찰나에 내가 찍어주는 사진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오빠의 반응까지 겹쳐 심통이 나 버렸다. 그렇게 오아마루까지 한 시간 정도 운전하는 오빠랑 대화하지 않고 잠만 자며 갔다.

왜? 사진 잘 찍었는데?


오아마루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2시간 30분 정도) 가기로 결정하고 맥도널드 주차장에서 아침에 싸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잘 잤어? 수인이가 자서 외로웠어." 애교 부리는 남편 앞에 마음이 풀린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블루투스 마이크를 연결해서 남편과 함께 차에서 노래도 부르고 곧 다가올 뉴질랜드 선거 이야기도 하면서 이동했다.


하지만 또다시 조금씩 심통이 올라오고 그것을 오빠에게 표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까지 캠퍼밴으로 딱 3주 여행을 마친 우리다. 조금 지쳤나? 아니면 어제 본 통장 잔액 때문에 그런가? 생각보다 남은 시간에 비해 여행 경비가 빠듯해서 마음이 움츠러든 건 아닌가 싶다. 그걸 오빠에게 표현하면 안 되는데 오늘 하루 종일 운전한 오빠에게 계속 표현하고 말았다. 내일은 가는 길에 오빠에게 좀 더 힘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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