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작가 Mar 15. 2024

섭외 못하는 막내작가는 죄인이다

방송작가의 섭외는 처절해

"뭐하고 있어? 섭외 안 하니? 여긴 누가 너를 가르쳐주는 데가 아니야. 알아서 해야지! (한숨)"

휴먼 다큐에 취업이 되어 제작사로 출근한 첫날, 뭘 해야할지 몰라서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는 나에게 메인언니가 한 말이다. 어디다가 전화를 하란 말인가? 뭐라고 해야한단 말인가? 아니 그리고, 좀 가르쳐주면 안 되나?싶었지만 기가 죽은 나는 "예"한 다음, 다른 막내들이 어떻게 취재하는지 엿듣고는 아무 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KBS인데요...즈기..." (뚝!)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 바로 옆엔 메인언니가 다~듣고 있다. 식은땀이 났다. 수화기를 내려놓을까말까...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뚜뚜뚜 소리가 들릴새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는 벌게진 얼굴로 발연기를 한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찾고 있어서요...추천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데요...아 네, 그렇군요. 그럼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눈치를 깐 언니는 얼굴이 굳어있다.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끊었으니 누가봐도 쇼다. 인사말도 끝나기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은 그 후로도 자주 일어났다. 부산에서 갓 상경해 사투리도 심했던 나는 작가가 아니라는 오해를 받거나 부산방송국 아니냐는 말도 종종 듣곤 했다.


하...가난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체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보통 가난해서도 보통 열심이어도 안 된다. 찢어지게 가난해야 하고,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프로그램이라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지금은 장수 프로그램이 되어 있지만) 1주일째 갈피를 못 잡고 우물쭈물하기 일쑤인 나를 보다못한 메인은 신경질적으로 일어서며 한마디를 한다. 유난히 목소리가 컸던 그 분.


"악! 나도 답사 가고 싶다고오~~!! 어휴. 소영아, 이 언니 좀 가르쳐줘라"


28살 늦깎이 막내였던 나는 어린 선배막내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섭외전화를 잘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근데 팁을 알려주던 동생도 "사실 나도 잘 못해...ㅎㅎ" 고백했다. 그래도 전화라도 매끄럽게 걸 수 있는 게 어디야? 전국의 지역아동복지센터와 사회복지센터 전화번호 리스트를 공유받은 나는 무작위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복지사들에게 사례를 추천받는 것이 이 다큐의 가장 기본적인 섭외라는 선배막내들의 조언에 따라! 사례자를 추천받으면, 기본 인적사항과 사연을 취재해서 1-2장짜리 아이템기획안을 작성하고, 메인한테 1차로 보여준 후 괜찮으면 더 취재를 해서 전체회의 때 브리핑을 해야하고, 까이면 다시 전화기를 들어야 했다.


한동안 메모장에 할 말을 다 띄워놓고 AI처럼 통화를 했다. 예상치못한 대답이 돌아오면 당황했지만 그것도 차츰 익숙해졌는데 섭외는 되지 않았다. 알아봐주겠다는 쪽은 극소수. 그럼 다음 스텝을 밟아야한다. 가난한데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리기사로 투잡을 뛰는 사람도 있을테고, 사업이 망해 노점을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별별 상상들을 하며 관련 커뮤니티에 "휴먼다큐 00에 출연하실 사례자를 찾습니다!" 글을 올리고,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으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메인언니에게 온갖 압박을 받으며 사무실에 있느니, 밖으로 나가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었다. 실제로 나는 쪽방촌도 가고 수산시장도 가고 경찰서 강력계도 갔다. 형사 아저씨들의 그 숨막히는 포스란...!


그렇게 전화 한 통 걸기가 겁나던 막내작가는 현장을 돌며 문을 두드리고 다니게 되었지만, 섭외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긁어모아 몇 사람 취재를 해도 보기좋게 까였다.


"아이템 뭐 있니? 줘봐"

오후에 출근한 메인언니가 아이템 취재노트를 훑어보면서 인상부터 찌푸린다.


"더 없니? 이런 먼지같은 사연으로 60분 말 수 있겠니? 휴, 이게 다야?"

이게 다인줄 알면서 왜 물어보노.싶지만 죄송합니다 대답하고 다시 전화를 돌린다. 밥도 잘 못 먹고, 자괴감에 쩌는 생활이 이어진다. 그래,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어.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섭외는 무슨 섭외람. 스팸전화 취급받는 게 방송작가 일인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 당장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갈등을 하다가도 버텨야한다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침부터 버스 막차 시간까지...섭외에 매달린다. 밤에 누가 전화를 받나? 받는다. 너무 실례 아닌가? 미안하지만 걸어야 한다. 공치는 하루가 이어질수록 목이 조여온다.


메인작가1 막내작가1 메인PD1 조연출1  이렇게 넷이 한 팀, 총 네 팀이 4주에 한 편을 만드는데, 1주 안에 섭외를 마치지 못하면 촬영 편집 대본까지 연쇄적으로 힘들어진다. 마지노선을 넘길 것 같은 경우에는 다른 팀 막내가 일찍 섭외한 아이템에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 이건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다, 동기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두 번이나 아이템 동냥을 얻어야 했고 자존심은 바닥났다.


그와중에 어떤 메인PD가 웬일로 막내들에 밥을 사주며, 속내를 드러낸다.

"소영이 너는 몇 개 섭외했어? 지원이 너는? 근데 희영이 너는 여태 하나도 못 찾은 거야?"

굳이 한 명 한 명 섭외력을 체크하며 자존심을 건든 그 PD를 난 그후로 쳐다도 보지 않았다. PD가 꽂은 비수는, 독기로 바뀌었고 여느 때처럼 목이 조여오던 날, 나는 방송작가가 되기 전에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 생활했던 고시원을 떠올렸다. 그래, 고시원에는 별별 사연의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는가? 고시원을 돌려보자!!


15-20만원대로 서울에서 가장 싼 고시원들이 밀집한 동네를 추려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막내들에게도 고통을 나누어주었다. 100통 전화하면 100통 까였다. "몰라요" "바빠요" "어떻게 알아요" 소득이 없자, 막내들은 하나둘 포기선언을 하고 복지센터로 돌아갔다. 메인언니도 나에게 "고시원? 뭐가 나오겠니?" 답답해했다. 그래도 했다. 이번에도 섭외 못하면...다 때려치우고 내려간다. 뭐에 홀린듯 계속 전화를 돌렸을 때였다. "음...삼부자가 한 방에 묵고 있긴한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죠" 고시원 사장님의 이 한마디!!에 유레카를 외쳤다. 강한 필이 왔다.


"사장님, 그 아저씨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제가 설명 좀 드리고 싶어서요" 사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아저씨와 연락이 닿았다. 처음에는 간단히 내 소개와 방송 취지를 설명했는데, 아저씨가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여서 빨리 화제를 전환해 사연을 물어봤다. 내쪽에서도 아저씨가 고시원에 산다는 정보만 있을뿐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취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왜 고시원에 머물게 되신 거예요?" 아저씨는 덤덤하게 "마누라가 도박빚 내고 도망가서, 그거 갚느라고 집 팔고 왔죠. 다 갚아갑니다" 나는 몇 가지를 더 물었고 통화를 하면할수록 사연에 강하게 끌렸다. 마침내 출연 제안을 했다. "아버님, 저희 방송에 출연하시면 후원도 받으실 수 있는데, 어떠실까요"라고 하니, "그딴 도움 필요 없어요. 끊습니다" 뚝.


아저씨의 자존심을 건든 모양이었다. 난 전략을 바꾸어, 장문의 절절한 문자를 보냈다. "아버님, 저희 방송은 단순히 모금 방송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가는 서민의 희망찬 이야기를 전하는 따뜻한 휴먼 다큐에요." 아저씨는 답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고시원에 찾아갔다. 박스째 음료를 사들고. 하지만 아저씨는 만나주지 않았다. 한참을 고시원 앞에서 아저씨를 기다리다가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한번 터지니 멈출 수가 없어서 복도로 뛰어나가 끄억끄억 오열했다. 누군가 따라나와서 나를 토닥였다. 괜찮다고, 다른 데 찾으면 된다고. 거절 당하는 일은 흔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미 두 달 넘게 거절만 당하고 있었던 터라, 더는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다.


겨우 진정을 하고 기가 팍 죽어 책상으로 돌아온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내 모든 진심을 다해서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님, 저는 3개월차 막내작가입니다. 여태까지 섭외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숨막히네요. 그렇다해서 출연자에게 진정성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이렇게 매달리는 법은 없습니다. 저도 그럴땐 바로 접어요. 그런데 아버님의 사연을 알고 나서는 포기가 정말 안 돼요. 우리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를 보여달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달라는 거예요. 저희 프로그램은 용기있는 분들이 나오는 방송입니다. 아버님은 분명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실 거라 믿어요. 이 문자를 끝으로 저도 더는 연락드리지 않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그리고 늘 아버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 참, 그거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180cm가 넘는 아빠와 아빠를 닮아 키가 큰 10대 아들들, 삼부자는 1평 남짓한 고시원에 몸을 구겨넣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종일 중국집 주방에서 일을 하고, 월급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하고 모두 아내의 빚을 갚는 데에 썼고 그렇게 꼬박 2년이 걸렸다는 아저씨. 방송이 나간 후 정말 많은 응원이 쏟아졌고, 후원도 많았는데 그 중엔 익명으로 2천 만 원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의사들은 무료로 아들의 척추측만증을 치료해주었고, 선물도 쏟아졌다. 그렇게 고시원 삼부자는 고시원을 탈출해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 후로 제작사 본부장은 회의시간마다 "고시원 삼부자같은 아이템을 찾으란 말이야. 가장 좋은 아이템이었어"라며 회상하곤 했다.


아저씨는 방송 이후,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작가님, 그땐 참 미안했어요.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네요"


고시원 삼부자를 섭외한 후로 자신감이 붙었던 나만큼 메인언니도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희영아, 언니는 말이야, 그런 상상을 한다? 정말 가난한데 부부가 너무 사랑해. 임신을 했는데 만삭이야. 곧 아기를 출산할 텐데 집은 너무 어려워. 남편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희영아, 난 다큐를 하면서 출산하는 장면을 한번은 꼭 담고 싶어"


성실한 막내 희영은, 언니의 그 상상 또한 현실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에필로그/

10년 후...


"먼지같노. 이건 별로. 다른 건 없나?"

그때의 메인언니보다 더 독해진 나는 후배들의 취재노트 첫줄만 보고도 칼같이 까고


"섭외란 말야, 설득이야. 출연자를 설득 못하면 시청자도 설득 못 해. 섭외를 잘 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것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 거란다"


이렇게 상꼰대가 되었다고 한다. (부끄러우니 회색으로 씀)







매거진의 이전글 타고난 작가의 끼, 초등학교 때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