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칼립투스 Dec 22. 2021

사과 받고 싶은 일을 대하는 법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났다. 정확히는 '아들 친구의 엄마'인 친구. 난생처음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이 채 가시기 전에, 아들을 두 달 넘게 따돌린 친구였다. 그때 당시엔 나도 그 (엄마인) 친구도 많이 미숙했기에, 조기에 조용히 진화했더라면 아이들 사이 사소한 해프닝일 수 있던 일을 참 아프게 들쑤시고 헤집었다. 그로 인해 난, 십 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긴 방황을 시작해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여전히 이따금씩 친구들이 괴롭힐 때가 있지만 쾌활하고 낙천적인 본인 성격대로 친구들과 잘 지낸다. 아들 문제로 힘들어할 때 엄마인 내가 무관심했다고 비수 같은 말을 가슴팍에 꽂아 넣던 남편과도 사이가 무척 좋아졌다. 몇 년이 걸렸고 딱히 본인 잘못을 명확히 인정한 건 아니지만 남편도, 오래전 아들을 괴롭혔던 친구도 당사자인 나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다. 먹음직스럽게 윤기 나는 초밥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반쯤 상한 비릿한 생선 내음이 좀처럼 입에서 가시지 않는 느낌이랄까. 양치질을 해도 해도 다시 이전의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는 불편함이란. 오래도록,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간관계에서 서로 사과할 일이 생겼을 때 왜 이토록 찝찝한 마음만이 남는지 고민해 왔고, 이제야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에 솔직한 내 성격이 난 꽤나 마음에 들었다. 빙빙 돌려 이야기하거나 앞에서는 찍 소리 못하고는 없는 자리에서 신나게 뒷담 화하는 비열한 성격이 될 순 없었다. 그건 멋이 없을 뿐 아니라 '악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를 믿어주는 대신 내 주변 사람들은 때로는 야비하고 표독스럽게, 그리고 동시에 집요하고 잔인하게 나를 내동댕이치고 짓이겨 없앴다. 이는 회사의 상사들, 집에 오면 남편, 아들 때문에 알게 된 다른 학부모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원래부터 없던 자존감은 더욱 바닥을 쳤고, 부당함을 견디느라 내 속은 썩어 들어갔다. 처음엔 나도 나름대로 강하게 받아치면 함부로 못하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얼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었을 뿐 아니라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건 반쯤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처우를 견디고 있었고, 특별히 내가 조금 더 심하게 겪는 것이 있다면 이유는 몰라도 나의 어떤 말과 행동이 상대방의 보다 격한 리액션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변 사람들보다 더 세게 쳐 맞는 것도, 맞은 자국이 더 얼얼한 것도, 내가 반쯤 원인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마흔이 되도록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한 번도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한 탓에, 나를 평가하고 단죄하고 소모한 타인의 말들은 칼로 도려내듯 살 같을 파고들었고,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 여력이 생길 때까지 5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세상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매번 매 순간 일률적이지 않으니, 어떤 형태로든 나 역시 상대방의 부서지기 쉬운 자아 어딘가를 위협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터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난,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상대에게 강하게 또는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여전히 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직업적인 목표가 되었든, 개인적인 것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 사는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는 얕은 그 무언가가 아닌, 오래도록 지속될 뿌듯함이 무엇일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젠 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시작을 해야 한다는 걸. 지금껏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서 피하던 남들의 평가와 조롱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실패하며 다시 시작하기를 몇 번은 반복해야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진다는 것도. 내가 오래도록 원했던 것이 나를 부당하게 대한 사람들의 사과가 아닌, 그들의 인정이었으며, 애당초 그들의 사과나 인정 따윈 내 인생을 만드는데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3년 후를 바라보며, 천천히, 차근차근 실패와 고통을 쌓다 보면 어느샌가 멀리 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첫 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